거의 대부분의 질병은 그 원인이 비만이라고 한다.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현대인의 영양상태가 호전되었지만, 소비되고 남은 양분은 우리 인체에 축적된다. 비만의 정의에 의하면 비만은 체중과는 큰 상관이 없다. 즉, 비만은 체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된 상태를 말한다. 운동선수의 경우 과체중이라도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체지방이 적어 비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만에 대한 인식은 커다란 격세지감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 30, 40년 전만해도 배가 나온 사람은 사장(?)이라고 하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부러운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난 할수록 비만률이 높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으니 아이러니까지 하다. 비만이 자본주의 양극화의 기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980년 8억 5,700만 명이었던 비만인구가 2013년에 20억 명에 이르렀다. 전 세계 인구 중 거의 삼분의 일 정도가 비만이라는 이야기다. 비만 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성인인구의 33.3%인 7800명이 비만인구로 집계되었다. 2위는 24%인 멕시코로 이어지고,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3.2%로 비교적 낮은 수치에 머물고 있다.(미국 미디어 비즈니스인사이더) 이웃나라 중국의 비만인구는 4.4%인 4,600만 명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비만문제는 국민의 건강과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비만치료를 위해 지출되는 추가 의료비만 일 년에 일인당 1,400달러라고 한다. 이는 어림잡아 1,100억 달러로 우리 돈으로 환산한다면 년 간 200조원에 이른다.(세계비만조사국) 미국이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단지 살을 빼는데 지출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합계 인구가 9억 명에 달하는 세계 최빈국 48개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액이 7천 8백억 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World Bank) 이런 수치를 볼 때 미국에서 지출되는 비만 비용은 윤리적인 문제로까지 거론 될 수 있다.

 

25년 전 미국에 소재한 한 잡지사에 근무할 때이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비만이 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홍보하고 있을 때였다. 취재거리를 찾다 보니 “뚱보클럽(Obesity Anonymous)”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살빼기가 힘들면 클럽이 생겼을까하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전화번호부를 뒤적여서 그 단체의 회장이라는 여성과 통화를 하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의외로 쉽게 약속 시간을 잡아주었다. 찻집에서 만났다. 만나자 마자 나의 눈을 의심했다. 약속 장소에 상상할 수 없이 뚱뚱한 여성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앞에 나타난 여성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오히려 연약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이다.

 

궁금해서 견딜 수 가 없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떻게 회장이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고 대신 팔의 긴 소매를 걷어 보였다. 살이 빠진 어깨 밑으로 신발주머니 보다 더 큰 축 처진 살가죽이 보였다. 살을 뺀 것이다. 그러나 살은 빠졌지만 피부는 늘어진 상태로 남아 있었다. 평생 짧은 소매 옷은 못 입는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어둡다 못해 슬퍼 보이기까지 하였다.

 

뚱보클럽에 대해 물어 봤다. 미국에는 3대 클럽이 존재한다고 했다. “알콜중독자 클럽(Alcoholic Anonymous)”, “도박중독자 클럽(Gamblers Anonymous)”, 그리고 “뚱보 클럽(Obesity Anonymous)”이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종류 클럽의 운영원리가 똑 같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알콜중독자 클럽이 창설되었을 때 만든 원칙을 세 클럽이 모두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클럽의 특징은 간단하다. 이는 일종의 회복 프로그램인데 자신이 처한 문제는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질병을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에 신(神)에게 의지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신은 특정한 신이 아니라 자신이 의지 할 수 있는 어떤 절대자면 된다.

 

이 클럽의 회복프로그램의 실행과정도 특이하다. 서로의 얼굴을 굳이 익힐 필요도 없이 어두운 밤이나 한적한 곳에 모여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한다. 서로의 이름도 굳이 밝히지 않는다. 다만 똑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실만 서로 알고 지낸다. 그들은 자신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가족들이 아무리 조언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고 한다. 이들의 충고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 3자의 생각이라는 불신이 기본에 깔려 있어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동료나 선험자의 도움을 받아야 병을 더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의학적으로도 입증된바 있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자신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한국도 비만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이미 미국식 식사 영향권에 들어와 있고, 자동차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운동량이 크게 줄어 비만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만세 도입을 공론화 하였다. 이어서 10월 17일 비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비만관리 대책위원회”가 출범되었다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하였다. 비만이 이미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인 부담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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