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서울 종로에서 모임이 있어 길가에서 서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길을 가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누구에겐가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워낙 큰소리로 야단을 치셔서 상황을 파악이 어렵지 않았다. 폐지를 수집하는 어떤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인도로 지나가면서 비켜 달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인도로 리어카를 끌고 가면서 사람을 비켜달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야단을 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 끝에 “90도 안 되는 놈이”라고 하시는 말에 주위에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말이 새삼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그 할아버지 연세가 최소한 90살은 넘었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 이제 우리 한국도 90세 시대가 된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 있다. 지하철의 경우 노약자석이 탑승한 노인들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리 몇 개를 놓고 서로 나이를 물어가며 앉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65세가 되면 경노우대증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은 75세는 넘어야 앉을 자격이 있다는 말씀을 하는 노인들을 본적이 있다. 지하철의 노약자석과 일반석을 바꾸어야 한다는 우스게 소리가 현실로 다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한국은 1970년대부터 고령인구의 증가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60년부터 2000년까지 아동인구수는 반으로 줄어들었으며,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2.9%에서 7.2%로 증가하였다. 2008년에는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약 501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2020년 이후부터는 고령인구가 15%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일본의 노인인구 비율과 비슷한 수치이다. 이런 예측이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개선과 보건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13년 이상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수준은 세계 중하위권에 속해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은 지난 1일 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세계 96개국의 노인복지 수준의 지표를 발표하였다. 소득, 건강, 역량, 우호적 환경 4개 영역의 13개 지표를 측정해 2014년 세계노인복지지표를 발표하였다. 전체 1위는 노르웨이(100점 만점에 93.4점)가 차지하였으며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독일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50.4점으로 중국과 카자흐스탄에 이어 50위였다. 지난해 91개국 중에서 67위에서 순위가 상승하였지만 여전히 크게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일본은 9위인 반면, 태국(36위),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스리랑카(43위)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영역별 구분 중에서 연금소득보장률, 노인빈곤율 등을 반영한 소득보장에서 80위에 그쳐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그나마 연금 수급률 데이터가 개정되면서 작년 90위에서 상승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평균수명이 급격히 연장되는 추세에 있다. 특히 85세 이상의 고령자수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국민의 81.5%가 노후보장을 위한 각종 공적연금에 가입하고 있다. 또한 전체 노인의 94.5%가 노인 단독 또는 노부부끼리만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과 같이 사는 노인들이 많은 우리의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그들은 공적연금, 공적부조금 등 소득보장관련정책이 잘되어 있어서 노인의 생계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독일은 사회복지와 관련된 사업은 기독교이념에 입각해서 종교단체나 자선단체가 담당해오고 있다. 즉, 민간단체가 사회복지를 주도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형태로 개입하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의 일환으로 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 결과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더불어 인구의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수반되면서 전통적인 가족구조와 가족들의 상호관계의 변화를 겪어 왔다. 현재 한국의 노인세대들은 대부분 우리나라를 경제 선진국 대열로 이끈 산업화의 역군들이다. 자신들을 희생해가며 현재 정보화의 주역이 되는 2세들을 교육시킨 장본인들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가족제도의 빠른 붕괴와 핵가족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소득 분야에서 노후 보장이 현저히 부족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노인복지제도나 노인복지 정책은 나라마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양상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도 1977년 의료보험 실시, 1981년 노인복지법, 1988년 국민연금법이 실시되어 외견상으로는 제도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있다. 그러나 문제는 노인복지 대책의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지방자치단체가 노인복지를 주도하고, 종교단체나 자선단체 등 민간단체가 전면에 나설 것을 제언하고 싶다. 언제까지 정부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