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면서...
한해를 보내면서...
  • 이윤범 교수
  • 승인 2014.12.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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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똑 같은 날인데도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 동안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지들의 얼굴 한번 보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이 때라도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보기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다. 이른바 송년모임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과도한 음주로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이것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아주 따뜻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서양에서도 여러 종류의 모임이 많다. 특별한 연회를 제외하고 크고 작은 모임을 모두 파티(party)라고 한다. 그들은 연말에 우리처럼 의무적으로 갖는 모임은 거의 없다. 대신 평상시에 파티가 자주 열린다. 오죽했으면 파티 에니멀(party animal)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우리의 명절 때처럼 크리스마스 날과 추수감사절에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 재회를 한다. 이때 그들은 가족끼리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만남을 즐긴다.

 

송년회와 같은 의미로 쓰는 망년회(忘年會)가 있다. 원래의 뜻은 그해에 괴로웠던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리자는 의미이다. 일본어에서 도래했다는 이 말을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의 기적을 달성하였다. 이 기적을 일궈낸 주역들의 희생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망년회야 말로 매 순간 닥치는 괴로움을 한해가 가기 전에 해소시키려 했던 흔적이 보이는 정겨운 말이다.

 

이런 모임에서 회자되는 가장 큰 주제는 역시 또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이다. 이것은 늙어 간다는 일종의 압박감이다. 대부분 모든 종교에서는 인간이 늙어 간다는 것은 자연현상이라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만물이 시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서 영생한 사람은 없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을 두려한 나머지 불로불사에 집착했던 진시황도 결국에 저세상으로 갔다.

 

나이에 대한 인식은 문화에 따라 사뭇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나이에 대한 개념이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 당연히 나이에 따라 위계질서를 따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 보는 것이 실례가 될 만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이와 크게 연관시키지 않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반면 장유유서를 강조하는 유교문화에서는 나이는 자신의 이름표와도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나이를 말하고 또 되풀이해야 되니 말이다. 명함에 나이를 적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그래서 자신의 나이를 망각할 순간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나이는 인간관계에 가장 기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도 상대의 나이를 먼저 알아야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 기준이 서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이 꼭 고통스런 것만은 아니다. 법정스님에 의하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진다고 한다. 그는 무소유에 대한 해박한 설법으로 유명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활의 도구나 물건에 대해 욕심을 부리거나 얽매인다면 그것만큼 추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나 관계 속에서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즐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일 것이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한 해 동안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자신의 욕심 때문에 타인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어설프게 남들을 돕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일은 아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으면 남을 돕는 것이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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