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발표한 `자본 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은 외환시장에서 대외개방.자유화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되 급격한 자본유출입으로 인한 위기 재발 가능성을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속적인 외환자유화 조치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 위기 때 외환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변동성을 줄일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인식의 발로인 셈이다.

특히 위기시 외환시장 교란의 주범인 단기외채 유출입 변동성을 낮추는데 방점을 뒀으며, 그 수단은 선물환 포지션 신설, 외화대출 제한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작년 11월 발표한 외환건전성 감독강화 방안을 좀더 보완하고, 일부 규제는 외국은행 국내지점에도 적용키로 했다.

이번 대책은 국내은행과 외은지점 모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지만 외은지점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벌써 시장에서는 외은지점의 영업공간이 축소돼 외화 유출이 일어나고 실물부분의 실수요까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정부는 그동안 스트레스 테스트 등 시뮬레이션을 진행했고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물환 포지션 신설..외화대출도 제한

이번 대책에서 정부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정책 수단은 선물환 포지션 규제 신설이다.

정부는 현재 국내은행과 외은지점에 대해 현물환 포지션과 선물환 포지션을 합한 종합포지션을 자기자본의 50% 이하로 규제하고 있지만 선물환 포지션 자체에 대해서도 국내은행 50% 이하, 외은지점 250% 이하라는 추가 규제를 신설했다.

외화대출에도 메스를 들이대 은행의 외화 차입시 해외사용 용도로만 가능하도록 했다. 종전까지 정부는 외화대출의 경우 원칙적으로 해외사용 용도로만 허용하고 있으나 예외적으로 시설자금에 한해 국산시설을 구입할 때에 한해 은행이 외화재원을 조달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해왔다.

외환건전성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작년 11월 발표한 외환건전성 감독강화 방안 중 일부에 대해 좀더 엄격한 규제를 도입한 것.

우선 국내은행에 적용되는 외화유동성비율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일별(日別) 관리하고 그 현황을 월별로 금융당국에 보고하도록 개정했다. 또 중장기 외화자금관리비율 산출시 외화대출 뿐만 아니라 외화만기보유증권을 포함시키고, 비율도 현행 90% 이상에서 100% 이상으로 상향조정했다.

국내은행에만 적용되는 외화유동성리스크 관리기준의 경우 외은지점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외은지점도 통화별 유동성 리스크 관리, 자금조달원 다변화, 위기상황 분석 및 비상조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다만 외은지점의 본점이 유동성 지원 확약서를 제출하는 경우 통화별 유동성 리스크 관리만 지키도록 해 국내은행에 비해 완화된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실수요 이상 선물환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선물환거래를 실물거래의 125% 이하로 했던 기준도 100% 이하로 강화했다.

◇외은지점 영향클 듯..정부 "보완책 충분히 마련"

이번 대책은 국내은행보다는 외은지점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작년 11월 외환대책이 주로 국내은행의 외화유동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외은지점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인식이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우선 선물환 포지션 규제만 봐도 외은지점이 직접적 타격을 받는다. 4월말 현재 국내은행의 선물환 포지션은 15.6%로 기준치를 크게 밑도는 반면 외은지점은 301.2%로 기준치보다 51.2%포인트나 높은 상태다.

실제로 55개 은행 중 한도를 초과해 선물환을 매입한 19개 은행 중 대부분은 외은지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은행들의 초과 매입포지션 187억달러 중 외은지점의 비중이 182억달러로 거의 대부분은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한도를 넘은 외은지점의 경우 신규 영업을 할 여력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한도를 기준치까지 축소하는 과정에서 영업위축, 달러 유출 등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한 외은지점의 경우 선물환 포지션이 900%에 육박하는 곳도 있어 이 은행은 대규모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후 3개월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기존 거래분에 대해서는 최장 2년까지 예외를 인정하는 등 보완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외환시장 안정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물환 포지션 제한 신설시 선물환 거래 규모가 줄고 이는 기업의 정상적인 환헤지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기존 거래분은 예외를 인정받는데다 포지션 한도보다 낮은 은행이 많아 환헤지 수요를 흡수할 여력이 있고, 중장기적으로 은행의 자기자본 확충시 매입가능한 선물환 수요도 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선물환거래를 실물거래의 100% 이하로 강화한 것 역시 실수요 거래 위축 우려가 나오지만 정부는 현재 대부분 은행과 기업은 100% 이내에서 헤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외화대출 제한도 해외사용 시설자금의 외화대출은 계속 허용하고 기존 국내시설자금 외화대출의 만기연장 허용, 중소제조업체에 대한 국내 시설자금의 외화대출 허용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3월말 현재 중소제조업체분을 제외하고 국내시설자금에 대한 외화대출 잔액은 108억달러다.

◇외은지점 반발가능성..정부 "적응해나갈 것"

이번 대책으로 인한 공이 어디로 튈지를 가늠할 키는 외은지점의 인식과 평가다. 부당한 규제라고 반발할 경우 외환시장의 불안요인이 증폭되겠지만 대체로 대책의 필요성에 수긍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 정부의 전언이다.

정부 관계자는 "수차례 시장의 분위기를 살폈지만 전체적인 틀에 공감한다는 분위기가 많았고, 견딜만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고 말했다.

외은지점들이 영업 축소나 시장 철수와 같은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공산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초과한 일부 외은지점은 영업을 대폭 축소하기보다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영업기반을 넓히겠다는 반응까지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은지점 규제가 신설되긴 했어도 외은지점 입장에서는 여전히 한국이 영업활동 공간으로서 유리한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 환율 등 외환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급격한 자본유출입 완화를 통해 통화.외환시장의 안정성을 높여 거시경제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이 나온다는 얘기는 수차례 보도됐고 골간도 소개됐기 때문에 이미 환율 등 외환시장에 상당히 반영된 상태라고 본다"며 "다만 단기 불안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시장 상황을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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