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봉선화 연극에 봉선화 노래는 없다.

 

그러나 봉선화 노래는 홍난파의 작곡으로 일제에 억눌렸던 민족의 애처로움을 표현한 우리민족의 가슴에 한 맺힌 노래로 많이 불렸다. 특히 자유당 말기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유석 조병옥박사는 술자리에서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 차례가 되면 어김없이 ‘봉선화’만 애창했다.

 

그가 대통령후보가 되어 독재자 이승만을 꺼꾸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부각 되었으나 불행히도 암 수술을 받기 위해서 미국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서 회생하지 못한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일대 충격이었다.

 

대항 후보가 없는 자유당 정권은 마음 놓고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으나 정의로운 학생들의 궐기로 4.19혁명이 성공하여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는 불행한 사태로 막을 내렸다. 조병옥이 목매어 불렀던 봉선화가 이번에는 노래 아닌 연극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작년도에 시연(始演)했던 연극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다시 한 번 세종문화회관에서 앵콜 공연에 나선 것이다. 이희원(李熙元) 동지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연극을 관람한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작년 공연 때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평과 함께 감동을 토해내는 연극평이 오히려 낮 설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의 생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봉선화 연극은 한마디로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것이다. 위안부라는 말을 미 국무장관을 역임한 힐러리는 ‘성노예’로 부른다. 그것은 유엔 인권위원회가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더라도 강제적으로 치욕을 감내해야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은 ‘성노예’가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는 굳이 이 말을 즐겨 쓰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일깨워 줄 수도 있는 직접적 표현을 삼가야 된다는 배려에서다. 종군 위안부라는 말은 자칫 종군기자, 종군 간호사 등 자진해서 군 전선에 투입된 사람들과 동의어로 얼버무려질 위험성이 있으나 ‘종군’만 빼면 그나마 순화된 정서로 불려 질수 있는 용어로 우리 사회의 동의가 성립된 느낌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서 강제로 연행한 부녀자들을 위안소에 가둬놓고 성노리개로 삼은 가장 악랄한 범죄였다. 위안부의 전체적인 숫자는 20만에서 40만 정도로 추산된다. 동원방법, 관리문제 등 모든 문서를 종전 직전에 소각해 버린 일본군은 지금까지도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전범 재판에서 이미 위안부 강제동원을 납치로 규정하고 소정의 응징을 받았음에도 이를 끝내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베 정권의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고 하지만 그것은 야당의 대안 부재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일 뿐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아베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그 도덕성을 상실했으며 강력한 후원자인 미국조차도 아베정권의 시행착오를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봉선화 연극은 이처럼 무거운 정치적 감각을 배제하고 위안부였던 순이 엄마의 가족사에 얽힌 비극을 용의주도하게 파헤치며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복합적으로 풀어 나간다. 1991년 “나는 일본국 위안부였다”는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는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증면된 사건이었다.

 

이로부터 위안부 문제는 심층에 묻혀있던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면서 한분, 두분 뭉치게 되었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열린다. 이에 힘입어 김서경, 김은성 조각가 부부는 ‘평화의 소녀상’을 조각하여 일본 대사관 맞은편 길목에 세웠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소녀는 14-5세의 어린 나이에 한복을 입고 머리가 뜯긴 채 일본군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옛 모습을 정성스레 담았다.

 

소녀상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고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에서는 공공장소에 똑같은 소녀상을 건립하여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 후에도 미국 곳곳에서 소녀상 건립 붐이 일어 현재 일곱 개의 키운티에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봉선화 연극은 과거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과 할머니들의 처참한 피해 사실만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연극이 아니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계층이 보이는 인식의 차이를 촘촘하게 구성하여 가족사로 풀어내면서 위안부 문제가 결코 나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가족의 이야기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의 문제임을 자각시키고, 어머니라는 정서를 바탕으로 여성과 가족, 평화와 인권에 대한 가슴깊이 우러나는 진정한 공감과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 연극이 미국의 각 도시를 돌며 전석 기립박수라는 전대미문의 열광적 감동을 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서울시극단장인 김혜련 예술총감독과 원작자인 윤정모 작가, 그리고 연출을 맡은 인천대 구태환 교수의 꾸밈없는 진정과 열성 때문이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초심을 지탱해준 스탭진과 배우들 열정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행정적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은 박원순 서울 시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고,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은 “다큐영화를 제작하여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리겠다.”는 뜻을 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위안부들의 새로운 삶을 챙기는데 기여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역시 “할머니 속의 아픈 것은 다 내려놓으세요.

 

우리에게 다 주고, 평화로운 마음만 갖고 가세요.”하면서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올 수 없었던 두렵고 외로웠던 할머니들의 삶을 위로한다. 연극을 관람한 많은 이들이 저절로 흘러내린 눈물을 감추지도 않은 것은 연극이 준 감명이 그만큼 컸음을 의미하며 기대하는바 넓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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