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밝으면 수없이 많은 덕담으로 세상은 환해진다. 과거에는 편지를 통하여 안부를 주고 받았지만 편지쓰기가 번거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연하장이 쏟아졌다.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는 불과 며칠 사이여서 함께 축복을 나눴다. 그나마 남북 서신거래는 70년이 되도록 꽉 막혀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휴대폰 출현 이후 많은 이들이 문자메시지로 대신한다. 우체국은 우편물 배달은 줄어들어 물품을 배달하는 택배업무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전국에 빠짐없이 존재하는 우체국 조직은 공기관의 신뢰도까지 쌓여있어 다른 택배회사에 견주어 월등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배달을 해야 하는 직업의 하나가 신문이다. 라디오와 TV에 상당량의 업무를 빼앗기고 있으며 인터넷의 급격한 발전으로 종이신문은 한 물 갔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오프라인 신문 구독자는 대폭 줄어들었다. 이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록 매스미디어의 왕좌는 양보할 수 있어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활자화한 신문 밖에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 신문을 통하여 남북의 지도자는 각기 신년사를 발표했다. 박근혜대통령은 청와대에 각계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약 5분정도의 연설 속에서 짧게나마 통일에 관한 의미 있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육성녹음을 통해서 무려 28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쳤는데 통일과 관련한 대목만 추려도 5분이 넘게 할애했다.

 

여기서 뜻밖에도 남북 고위급 회담과 최고위급 회담까지 언급되어 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표현은 분명히 회담제의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의다. 지난번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느닷없이 3인의 실세를 파견하여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던 것도 결국 ‘깜짝 쇼’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섰다는 데서 그 의미가 깊고 크다.

 

그동안 북한 측의 대남자세는 들쭉날쭉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아 이번에도 그들의 진정성에 의문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걸핏하면 트집을 잡고 국제외교상 허용하기 어려운 돌발제의 등으로 문제를 복잡하게 한 것이 한두 차례 아니다. 그러나 이번은 제안자가 다르다. 최고 지도자가 몸소 나와 확실한 어조로 회담을 제의한 것은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이긴 하지만 우리로서는 진정을 담아 받아드리는 것이 외교예의다.

 

그가 한미군사훈련을 거론했지만 남북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재개, 5.24조치해제 등 현안과 맞물려 상호양보를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시기가 무르익었다. 다만 최대의 걸림돌은 ‘북핵’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겉으로 웃으면서 만나더라도 흉중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고사(故事)를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은 공산당 단일체제로 김정은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유일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위에서 밀어붙이면 끝난다. 그러나 한국은 수많은 정당이 현존하고 보수와 진보진영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으며 6.25사변의 피해와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

 

이번에 새로 제작된 영화 ‘국제시장’은 때맞춰 전국 극장에서 대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정치인들이 대거 국제시장에 다녀왔다. 부부싸움을 하던 부부는 애국가가 울려나오자 가슴에 손을 얹고 경례를 한다. 대통령은 이를 애국심의 발로로 높게 평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대표는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 일이 없다”고 했으며 새정치연합 문재인대표후보는 “누가 이 영화를 보수영화라고 하는가?”하면서 온 가족이 봐야할 영화로 추천했다. 김무성의 아들 ‘고윤’이 영화배우로 흥남철수작전에서 피난민 승선을 권유한 현봉학 역을 맡았다고 해서 화제를 뿌리기도 한다. 처참하고 고통스러웠던 6.25세대들은 북한정권을 믿지 못한다.

 

김대중 노무현이 차례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그들 자신도 서로를 믿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는 평화협약을 체결하고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었지만 김대중은 김정일을 떨구고 혼자서 단독 수상했다. 정상회담의 과실을 독차지했다는 뒷말을 들어야 했던 이유다. 이번에 열리게 될 정상회담은 과거를 되풀이하는 이벤트성을 철저히 멀리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통일’에 대한 의식이 박약하다. 청년실업의 여파도 있겠지만 통일비용에 대한 공포심조차 나타낸다. 북한주민들의 대거남하 사태도 우려한다.

 

극심한 사회혼란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 해 특집으로 마련된 여론조사 수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질의내용을 어떻게 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답변의 수치가 변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를 전적으로 믿을 바는 아니지만 많은 젊은이들의 통일에 대한 의식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제의했다고 해서 꼭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대북제재조치가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지도 미지수다. 더구나 우리는 진영논리에 따라 사분오열된 국론이 현존한다. 이를 다잡고 굳센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부여야 한다. 통일문제는 감상적 처리를 극력 배제하고 남북의 통일셈법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전제를 깔지 않고서는 자칫 게도 구럭도 놓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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