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안산 인질범 5시간 대치 끝 특공대 투입해 검거

 

▲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에서 자녀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힌 후 방안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박모씨의 시신이 차로 옮겨지고 있다. 


[중앙뉴스=신주영기자]별거 중이던 아내를 불러달라며 의붓딸 등을 인질로 잡고 5시간여 동안 경찰과 대치해 온 40대가 흉기를 휘둘러 아내의 전남편과 의붓딸 등 2명이 사망했다.

인질범은 별거 중이지만 법적으로 혼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아내가 전남편과 외도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해 이처럼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인질범과 대치 끝에 집안으로 강제 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인명피해를 막지 못한데다 인질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작전에 나선 것으로 확인돼 허술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낮 주택가 5시간 걸친 인질극

13일 오전 9시 36분께 경찰 112상황실로 "재혼한 남편이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는 A(44)씨의 신고가 접수됐다.

안산시 상록구 A씨 전남편 B(49)씨의 다세대주택으로 출동한 경찰은 A씨의 두 딸 등을 흉기로 위협하는 김모(47)씨와 대치한 채 협상에 들어갔다.

A씨는 현장에 와서 김씨와 전화통화를 통해 인질극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씨는 흥분한 상태로 욕설과 고성을 계속 퍼부어댔다.

오후들어 김씨는 경찰에 '자수하겠다. 오전부터 통화한 형사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가 형사가 올라오자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1분 10초간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경찰은 인질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특공대를 투입, 출입문과 창문 등을 통해 집안으로 강제 진입했다.

김씨는 바로 검거됐지만, 집 안에서는 흉기에 찔려 숨진 B씨와 피를 흘리고 쓰러진 막내딸(16)이 발견됐다.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진 막내딸은 결국 숨졌다.
나머지 딸 1명과 B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40대 여성 등 2명은 무사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무런 진술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A씨도 충격이 심해 원스톱지원센터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고, 생존자 2명도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다"며 "아직 사건경위나 인물들의 관계 등이 파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씨와 A씨는 법적으로 부부 관계지만 현재는 별거 중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를 안산상록서로 옮겨 정확한 사건경위와 범행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외도 의심이 빚은 참극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이날 오후 언론 브리핑을 통해 김씨에게서 '아내와 전화연락이 닿지 않자 외도를 의심해 범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별거 중인 부인 A씨가 최근 휴대전화를 받지 않자 12일 오후 3∼4시께 B씨 집을 찾아갔다.

당시 집에 있던 B씨의 지인 여성(생존여성)에게는 'B씨의 동생이다'고 속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으며, 오후 9시께 B씨가 집에 들어오자 몸싸움 중 흉기로 목을 찔러 B씨를 살해한 뒤 화장실에 시신을 방치했다.

이어 B씨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김씨는 13일 오전 A씨와 통화하던 중 격분해 막내딸(16)의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막내딸은 김씨 검거 직후인 오후 2시 40분께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A씨는 전남편 B씨와 이혼한 뒤 2007년 7월 김씨와 재혼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혼한 사이인 A씨와 B씨가 실제 내연 관계였는지는 조사되지 않았다"며 "B씨에게는 애인으로 추정되는 지인여성이 있었는데도 김씨가 B씨를 살해한 것이 단순한 '오해'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더 조사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조사를 마치는 대로 김씨에 대해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 인질극 대응 미흡 '도마 위'

통상 인질극 사건에서 인질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경찰의 '대응'이다.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단순 인질극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지만, 이번과 같이 살인사건과 같은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낙제점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사건 신고를 접수하고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김씨와 대치했다.

무려 5시간여 동안 대치하면서 인질극을 중단할 것을 설득했지만 정작 김씨와 A씨, B씨간 정확한 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A씨가 누구와 언제까지 혼인했다가 이혼했고, 또 언제부터 언제까지 누구와 혼인상태를 유지하며 동거했는지, 최근에는 어디서 거주했는지 등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김씨와 A씨가 재혼한 법적 부부관계이며, B씨는 A씨의 전남편이자, 인질이었던 두 딸의 친부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사건과 관련된 인물간 관계조차 명확하게 확인하지 못하다보니, 범행 동기, 살인사건 비화 가능성 등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 대응하는데 미숙했다는 것이다.
또 경찰은 사건 신고 직후 인질은 의붓딸 2명이라고 파악했지만, 실제 B씨와 B씨의 지인 등 2명이 더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B씨 시신은 숨진 지 하루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이 현장의 인질수나 인질의 사망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경찰은 대치 5시간여 만인 오후 2시 30분께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켜 김씨를 검거했는데, 좀 더 일찍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더라면, 적어도 막내딸은 살릴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경찰특공대는 낮 12시 40분께부터 건물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진 오후 2시 30분께가 돼서야 작전에 나섰다.

김씨는 이날 오전 A씨와 통화 도중 화가 나 막내딸을 살해했다고 진술했지만 명확한 시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경기경찰청측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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