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골에서 견디다
  김세영
 
적도의 심장이 화차처럼 이글거려도
내 몸이 녹아내리지 않는 것은
북해의 냉류가 등줄기를 냉각코일처럼 감고 내려와
골짜기에 얼음골을 이루고 있음이다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달뜨지 않는 것은
정수리 위 오로라의 서기瑞氣
온몸을 감싸고 있음이다
열기의 박동소리가 능선의 나뭇잎을 흔들어도
뜨거운 핏물이 윗계곡의 바위를 달구어도
암반의 고드름은 흰 건반처럼 가지런하다
저물녘 암벽의 견고한 그림자로
골짜기 저수지의 얼음판 위로
별빛의 징소리를 내며 건너오고 있다
열대야의 밤에도 남극의 펭귄처럼
불면의 맨발로 빙판 위에 서서  
몽당날개지만 파닥이며 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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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맑은 영혼의 갈구가 느껴지는 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얼음골인지도 모른다.
적도의 심장이 화차 같이 뜨거워도 녹아 버리지 않는 것은
얼음을 이룬 북해의 냉류 때문이라니,
가슴이 쿵, 한 대 맞은 듯 했다.
우주 공간에서 또 하나의 우주인 인간이라는 존재,
마음이 원하는 길과 몸이 원하는 길이 다를 때


육체의 욕망에 끌려가지 말고 정신의 맑은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화자의 메시지인 것 같다.
 
영과 육의 결합체인 우리 몸,
‘우주공간 속에서는 생명체를 품은 푸른 지구 같은 것,
때로 영과 육이 싸우지만 영성의 존재가 될 때
더욱 아름다운 별이 되어 빛날 것‘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그렇다. 육신의 욕망은 허망하고 추악할 때가 많다.
관계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고달플 때
나의 영성이 차갑게 손짓하는 얼음골에 가보자.
견뎌야지. 살아내야지 고드름처럼 대롱대롱 악착 같이
식지 않는 심장의 열기로 바르게 살아야지
언젠가 다 녹아 몇 방울로 남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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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시인/
2007년<미네르바>등단
시집 『물구나무 서다』,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시산맥시회 고문, 성균관의대 외래교수
 

 
▲    시인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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