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길을 오르는 종소리
                   권행은
 
 
골목은 어둑한 바닥을 물고 있어서 이가 아프다
치통을 앓는 골목에게 시간은 독거노인
부어오른 골목이 바람에 휘고 있다
 
두부장수가
시간의 틈새에 빠진 발자국을 조심스레 거두어 언덕을 오른다
겨울마다 얼음 든 상처를 진물로 흘려서
음식을 씹지 못하는 골목은
오래도록 허술한 집들을 낳았다 
 
누우면 하늘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산동네
사나흘씩 사람들의 발목이 묶이는 골목으로
어떻게 찾아왔을까 두부장수
종소리가 따뜻한 호명이 되어 사람들을 부른다
 
귀먹은 해거름을 깨우는 종소리가
앓아누운 할머니의 언 손으로 두부 한 모를 쥐어주자
내려앉은 창들도 그제야 꾸물꾸물 밥을 짓는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아궁이가 불을 먹는다
 
닫힌 빗장 속으로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눈송이처럼 뛰어들 때
바쁘신 하나님도 모처럼 숨을 고르신다,
흰 눈처럼 이 세상 어디에나
부드러운 잇몸을 가지고
 
두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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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의‘산소 같은 여자‘라는 모 화장품의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오늘 산소 같은 시 한 편을 만난 기쁨에 얼른 이 시를 소개하고 싶어
마음이 자꾸 들떴다.
역시 산소 같은 화자의 진정성이 꽁꽁 언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두부는 그 옛날 어느 달동네의 골목에 이른 아침 종소리로
말랑말랑, 모락모락거리는 정겨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어린 시절 양푼 하나 들고 쪼르르 나가 두부 두 모도 아니고
달랑 한 모 받아오면 온 식구가 오순도순 입맛을 서로 나누던
밥상머리 이야기, 그 설레던 종소리...
오늘은 마트에서 사온 포장두부를 넣고 된장국을 끓이다가
따뜻한 권행은 시인의 이 작품을 뇌어보았다.
화자는 시작 노트에
"손길이 닿지 않아 아프고 추운 날들을 보내시는,
지금 어려운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그 분들에게 따뜻한 두부 한 모를 마음으로 올리며,
시린 체온을 데워줄 종소리가 무얼까 생각해보며 위 시를 쓰게 되었다"고,
자꾸만 가슴에 종을 울리는 화자의 산소 같은 마음을 나도 닮고 싶다.
콘크리트 옷 두껍게 입은 골목마다 두부장수 종소리는
사라졌지만 말랑말랑한 잇몸의 두부가 웃는다.
그래, 두부는 있다.
(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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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은 시인/
    미네르바 등단(2006)
    영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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