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맨 처음 행보가 국립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한 것이었다. 많은 지도자들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이들과 민족의 지도자로 큰 역할을 했던 분들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충원에 모셔진 세 분의 전 대통령 묘소참배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은 꽤 오랜 시일 계속되어 왔다. 공식적으로는 현충탑에 헌화하고 향을 사르는 것으로 행사를 마치면 된다. 현충원에 안장된 모든 영령들에게 일괄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공식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이나, 과거의 친불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따로 직접 묘소를 찾아 충심을 보여주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위에 거론된 세 분의 전 대통령은 생존 시의 공과(功過)를 둘러싸고 산 사람들의 첨예한 이해로 대립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치열한 정적이었던 박정희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때 시비를 건 사람은 별로 없었다. 노무현은 전 대통령 묘소참배를 하지 않았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는 모두 참배했으나 문재인은 김대중 묘소만 찾았고 당대표가 된 김한길은 이, 박묘소를 참배하려다가 당내반발로 그만 뒀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세 분의 묘소를 모두 참배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첨예하게 이념대립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번 문재인의 묘소참배 역시 진즉부터 예측되었던 일이다.

 

그는 대통령후보였고 거대야당의 대표로 선출된 입장이기 때문에 전 국민을 의식하는 게 급선무다. 당내에서의 리더십은 물론 흐트러진 민심을 끌어안아 통합과 화해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이념투쟁을 지양하고 중도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정치지도자로서 선택한 묘소참배는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정청래 등이 극열하게 비판에 나섬으로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표현방법과 사례인용은 매우 거칠다. “독일인들이 사과했다고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수 있느냐” “일본인들이 사과한다고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수 있느냐” 참으로 묘한 여운을 남기는 사례인용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히틀러 묘소를 찾을 유대인은 없을 것이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관광차 들렸을 한국인은 더러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히틀러나 야스쿠니는 적대국이기 때문에 굳이 찾을 이유도 없고 공식적 행사에 외국인들이 참여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세 분의 묘소를 참배한 것을 히틀러와 야스쿠니에 비유한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 전 대통령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민족을 이끌어갔던 어른이다. 공도 크고 과도 많다. 다만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에 후세인(後世人)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일은 당연한 게 아닌가. 참배는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행위도 아니며 찬사를 엮어내는 일도 아니다. 명복을 빌 뿐이다.

 

죽은 사람을 두고 옛날 조선왕조에서는 2차에 걸쳐 치열한 논쟁으로 조정대신들이 크게 다투는 일이 생겼다. 예(禮)에 관한 논쟁이라고 해서 예송(禮訟)이라고 한다. 1차 예송은 효종이 죽었을 때 일어났다. 장자를 적통으로 인정하는 당시 관습에 따라 차남이었던 효종이 죽자 인조의 왕후였던 조대비가 1년 복을 입느냐, 3년 복을 입느냐 하는 문제였다.

 

서인 송시열은 효종이 차남출신이니까 1년 복만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윤휴 등 남인들은 왕이 종통을 이은 사람이니까 3년 복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에서는 송시열의 주장이 먹혀들었으나 두 번째는 상황이 달라졌다. 현종의 모친 인선왕후가 죽자 자의대비가 9개월만 상복을 입어냐 한다고 송시열이 주창하자 현종이 대노하여 예조 담당자를 모두 파직하고 송시열의 서인들에게 패배를 안겼다.

 

이 예송은 단순한 복식문제 같았지만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진 붕당(朋黨)의 승패였다. 문재인 참배 역시 친노, 비노 싸움이 극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허탈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북한과의 냉전 상태를 지양하고 평화통일의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다. 천안함 폭파, 연평도 포격 등 악재가 남아 있지만 끈질긴 대화와 화합분위기 조성에 앞장서 남북 간의 긴장을 해소하는 게 민족의 생존에 끽긴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포퓰리즘에 빠진 무상복지에서 벗어나 선택복지를 지향하는 정책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교원연금 등 미뤄서는 안 되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요즘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들이 미증유의 경제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유례없이 빠른 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은 저출산 문제까지 겹쳐 심각한 노동력 상실 국면에 빠져 있다. 한가하게 묘소참배로 다투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4.19세대는 이승만독재자를 참배했다고 비난하고, 진보좌파는 이, 박을 싸잡아 공격한다.

 

그들 나름의 가치관과 역사관에 입각한 것이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먼 훗날의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국론통일과 통합의 담론에 다가서는 일임을 이제 깨달을 때라고 생각된다. 묘소참배를 둘러싼 부질없는 현대판 예송은 멈춰야 한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