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  대  열 (전북대 초빙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무슨 바람을 탔는지 30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서울대 젊은 교수가 썼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요즘에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고 책깨나 썼다는 인사 중에는 ‘3만부 정도 팔려야 할 책’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저자와 출판사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이나 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으는 영화는 언론의 보도가 센세이셔널 할 때 나타난다.

해운대, 명량, 국제시장 등의 영화가 예술성보다 콘텐츠에 힘입은 시대적 상황에 기인했다고 보는 이유다. 정치계에서도 안철수의 인기가 그런 부류 중의 하나다. 정치경륜과 판단력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던 안철수가 느닷없이 대통령후보 인기1위로 올라섰던 것과 똑같다.

안철수는 노회찬의 선거무효 판결로 노원병 선거구에서 60%의 득표로 국회의원이 되어 새로운 당을 만든다고 떠벌리다가 결국 민주당과 합쳐 새정치연합 소속이 되었다. 그가 노원 선거구에 2014 의정보고서를 돌렸는데 경력을 읽으며 실소를 금하기 어려웠다. ‘2011 서울시장후보 양보’라는 항목 때문이다.

그가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제 입을 통하여 자랑스럽게 내세울 일인가? 인기절정에 올랐던 것도 사실이고 출마를 강행했다면 당시의 트렌드에 의해서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의 열망을 팽개치고 과감하게 후보를 양보했다.

시장자리가 하찮아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대선으로 직행하겠다는 꿍꿍이가 있었을 것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그것은 양보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판단에서 나온 이기적인 정치행위였을 뿐 선배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겸손이나 겸허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양보는 자기를 낮추고,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지 더 큰 욕심을 달성하려는 책략에서 나온 것이라면 미덕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선출직공직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선출되기 때문에 개인이 후보를 양보한다고 끝나는 일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다고 의정보고서에 내세울 수도, 내세워서도 안 되는 이유다.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관객을 유치하기 어려운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정치적으로 아직 큰 인물로 부각하기에는 미숙한 사람이 각광을 받는 사회풍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요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똑같은 현상이라고 하지만 바보상자로 호칭되는 TV프로그램이 온통 비슷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한 사례가 될 듯싶다. 온갖 방송채널이 수도 없이 널려있는 TV는 리모컨 덕분에 이것저것 쉴 새 없이 눌러보게 된다.

종편이 등장하면서 특히 저질성 프로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상파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는 게 건강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건강하고 싶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고나면 온몸이 쑤시고 걷기도 힘들며 입맛이 떨어져 맛있는 반찬도 먼 산보기가 된다.
주위에서 “아무개가 암에 걸렸다더라.”하는 말을 들으면 나도 그런 증세가 있는데 하며 걱정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에 대한 상식을 얻고자 건강에 대한 서적들이 넘쳐난다. 병을 이겨내고 건강해졌다는 경험담, 병을 예방하는 비법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어 상당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책과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고, 운동을 하게 되며, 예방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고 아픈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꿈같은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가능한 한 살아있을 때 아프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 건강보험공단이 14조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병원출입을 안해서일까. 그게 아니다. 불경기로 돈주머니가 말라 자연스럽게 병원에 가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안타까운 해설이 붙어 있었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박에 없지만 영향력이 큰 TV 매체들이 다투어 건강 프로그램을 많이 내보내는 것은 자칫 국민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

채널을 돌리면 ‘산에 사는 자연인’이 왜 그렇게 많은가. 채널을 돌리면 의사, 한의사, 자연치유사라는 사람들까지 출연하여 경쟁적으로 경험담과 임상결과를 얘기한다. 이들의 발언이 국민건강에 일정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TV출연의 특성상 자기의 경험담 등이 시청자에게 극적으로 먹혀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과장하거나 자기를 과시하는 수도 있다. 게다가 모든 채널의 프로그램이 유사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낭패스런 일 중의 하나다. 일종의 베끼기다.

인간은 본인의 노력으로 상당부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배워온 알맞게 먹고, 열심히 운동하며,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일생을 두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건강법을 내버리고 말초적인 얘기에만 집중하는 TV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염려도 없지 않다.

건강 프로그램보다 인성증진 프로그램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필자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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