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들이 권력기관 출신의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풍토는 올해도 여전했다.


[중앙뉴스=신주영기자]대기업들이 권력기관 출신의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풍토는 올해도 여전했다. 

 

10대 재벌그룹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4명은 청와대나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검찰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전직 장·차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기업들이 노골적으로 권력기관 출신을 영입해 방패막이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해마다 나오고 있지만 재벌의 '권력 출신 사랑'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이 올해 주총에서 선임(신규·재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39.5%(47명)는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기관 출신 비중은 지난해 39.7%(50명)와 비슷했다.

 

직업별로 살펴보면 정부 고위직이 18명으로 가장 많았다. 판·검사(12명), 공정위(8명), 국세청(7명), 금감원(2명)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올해는 정부 고위직 가운데 장·차관을 지낸 인사의 선임이 두드러졌다.

정부 고위직 18명 가운데 장·차관 출신은 12명(66.7%)으로 지난해(6명·27.2%)의 배였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생명은 박봉흠 기획예산처 전 장관과 김정관 지식경제부 전 차관을, 삼성SDI는 노민기 노동부 전 차관을 사외이사로 각각 재선임한다.

 

기아자동차는 이달 20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올린다. 

 

SK C&C(하금열 전 대통령실장), SK텔레콤(이재훈 산업자원부 전 차관) 등 SK그룹 계열사들도 정부 고위직 출신을 사외이사 자리에 앉힌다.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은 각각 문성우 법무부 전 차관과 김성호 보건복지부 전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택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신규 선임하는 사외이사는 모두 고위공직자나 권력 기관 출신들이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윤증현 기획재정부 전 장관, 박병원 대통령실 전 경제수석비서관, 김대기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은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로 내정됐다.

 

김대기 전 수석은 SK이노베이션의 사외이사도 맡을 예정이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기업들이 바람막이로써 권력 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며 "올해는 세무조사가 약해진 탓인지 국세청 출신이 줄고 대신 전직 장·차관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국세청 출신으로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이병국(현대차)·전형수(GS글로벌)·이주석(대한항공) 씨와 박차석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롯데제과) 등이 사외이사 자리에 오를 예정이다.

 

검찰과 판사 출신도 사외이사 자리에 다수 포진됐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현대글로비스), 홍만표 전 대검 기획조정부장(LG전자), 변동걸 서울중앙지법 전 원장(삼성정밀화학) 등이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다.

 

또 두산중공업은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롯데제과는 강대형 공정위 전 부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그룹별로 보면 LG그룹이 사외이사 13명 가운데 1명만 검찰 출신으로 선임해 권력 기관 비중(7.7%)이 가장 낮았다. 

 

반면 두산그룹은 9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8명(88.9%)을 권력 기관 출신으로 선임했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한진그룹의 권력 기관 출신 비중은 각각 50.0%였다.

GS(40.0%), 삼성(39.3%), SK(35.0%), 한화(33.3%), 롯데(30.8%)가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보통 권력 기관 출신들의 전문성을 보고 사외이사를 뽑는다고 하지만 사외이사 제도는 전문성보다 독립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외이사 제도는 오너 일가로 구성된 경영진의 방만 경영과 독단적 결정을 감시·견제하는 창구로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가 애초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 권력과 재벌이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온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유력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이사회에서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외이사 스스로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를 재선임하지 못하도록 주주가 행동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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