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섭 기자의 말말말]힘없는 개인의 자유를 유린한 삼성의 폭력

사찰(査察)이라는 것은 본래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예날부터 관료들의 비리를 자체적으로 적발하고 바로 잡기 위해

사정부(司正府), 어사대(御史臺), 사헌부(司憲府) 등의 이름으로 존재해왔고 오늘날에는 공무원들의 비리를 적발하기 위한 감사원(監査院)이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정치권이 바뀔때마다 새로 권력을 잡은 쪽에서 자신의 정적(靜寂)이나 경쟁 세력을 탄압할 목적으로 상대방의 뒤를 캐는 정치사찰(政治査察)도 버려야할 구 시대적 악습이며

비민주적인 국가에서 주로 횡횡하는 일이다. 솔직히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다.

 

먹이사슬의 최고 권력자가 트집을 잡으려 맘만 먹으면 정작 덧에 걸리지 않을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국가가 '침소봉대(針小捧大)(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떠벌림)'하는 경우는 없는지

지금은 국민들 모두가 잘 살피고 객관적으로 잘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한 지혜의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처음부터 '구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기자가 일갈(一喝)할 일이 최근 벌어졌다.SNS상에서 삼성 직원들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내용들이 올라오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벌 기업 삼성이 부도덕한 행위가 만 천하에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이건 어느 경우보다 가장 심각한 사건이며 민간인에 대한 테러다.

 

삼성이 자행한 민간인 사찰은 공무원도 아닌 일반인을 뒷조사를 한 것으로 자신들을 비판한 세력을 몰아세우기 위한 흉계나 다름없다.

 

기업이 민간인 사찰의 결과 드러난 약점을 근거로 영향력 있는 지위에서 쫒아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들로 그 자리를 채운 뒤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억압하고 여론을 왜곡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한다면 이건 범죄나 다름없다.

 

이러한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국기 문란 행위이며 만약 국가 원수가 개입되어 있다고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마땅한 탄핵감이요 기업이 개입되었다면 검찰의 칼날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직원들을 사찰한다는 의혹을 수차례 받아왔지만 그때마다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있다.삼성이 소음피해 민원인과 삼성 테크윈 노동조합 조합원을 사찰한 정황이 밝혀졌다.이는 삼성물산 고객만족(CS)팀 등 직원들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테크윈지회 측은 “그간 미행받는 느낌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물증이 없었다”. “노조 움직임이 감시 받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찰의 배후가 삼성그룹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돼 이번 사찰파문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4일 경향신문은 삼성물산 임직원이 민원인을 미행하고,그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카톡방 화면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카톡방에는 삼성에스원 직원들이 삼성테크윈 노조 간부의

시위 동향을 보고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삼성이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미행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간인 사찰이 사실로 들어나자 삼성 측은 미행 사실을 인정하고“임직원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서 무엇보다 당사자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즉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관련 임직원들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해 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그런 식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누가, 왜 이런 공작을 벌였는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과 및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민간인 미행과 사찰은 명백한 불법 행위이므로 사법 당국의 수사가 요구된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물산 직원들은 지난 13일 민원인이 집에서 주주총회장까지 가는 동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카톡방에 실시간으로 글로 올렸다.

 

삼성 계열사 주총이 일제히 열린 지난 13일 삼성물산 고객만족(CS)팀 최모 대리 등은 직원 27명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소음문제로

5년째 삼성물산에 민원을 제기해오고 있는 강모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히 보고했다. 카톡 대화방은 주총이 열리기 전날인 12일 오후 5시쯤 개설됐다.

 

주총 당일 오전 6시 46분, 카톡방에 강씨 집에 불이 켜졌다는 글이 뜨자 “첫 발견자는 강씨 착용 의복 등을 공유 바란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7시 44분 “하얀 점퍼, 검은 바지, 흰 운동화” 차림의 길음역으로 걸어가는 강씨 사진이 올라왔고, “오전 8시 40분쯤 양재동 aT센터 도착 예상”이란 글이 이어졌다.

강씨는 이날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주총에 참가했다.

 

특히 강씨는 삼성물산에 수년째 주차장 소음 민원을 제기해왔다고 한다. 삼성 측은 군사작전 하듯 직원들을 조를 짜 구간별로 배치해 미행을 시켰다.

집에 불이 켜졌다” “하얀 점퍼에 검은 바지 차림” 등 카톡방 글을 보면 첩보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다. 같은 카톡방에 삼성테크윈 노조 간부들이

삼성물산과 다른 곳에서 열린 주주총회장 앞에서 시위 준비 중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삼성에스원에서도 별도의 미행 및 사찰팀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됐든 삼성에 미운털이 박힌 인사는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수시로 동향을 염탐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기업을 자임하는 삼성이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고

사생활까지 넘본다고 생각하니 개탄할 노릇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개인의 자유를 유린하는 재벌의 폭력이며 국민에 대한 테러다!

 

삼성의 미행과 사찰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12년엔 그룹 직원들을 시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했다가 형사처벌을 받았다.

 

또 삼성SDI가 2007년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직원들을 사찰한 문건이 공개되는 등 노조 사찰 의혹 제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삼성은 그때마다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인을 미행·사찰하는 행태는 삼성이 내세우는 ‘초일류 글로벌기업’이란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不在)가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은 3세 승계(承繼)를 앞두고 불편한 ‘과거사’를 일정부분 털고 가려고 지난 1월16일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보상기준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직적인 미행과 사찰을 하는 모습은 2015년 삼성이 내세운 도전과 변화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겉다르고 속다르다고 해야하나? 문제가 생기면 고치려 들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원인이나 노조의 입만 막으면 된다는 비뚤어진 기업문화는 결코 비난의 화살을 피해 갈 수 없다.

삼성이 이처럼 비정상적이고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면 이는 1세대 2세대에 걸쳐 쌓아 놓았던 글로벌 삼성의 이미지는 이제 없다.공은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어갔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경제의 한축인 삼성이 미래로의 도전이냐 과거로의 도태(淘汰)냐는 삼성가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의 선택과 용기에 달려있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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