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이 주목 된다! 박해람 시인의
이 시집이 주목 된다! 박해람 시인의
  • 최희 기자
  • 승인 2015.04.0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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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잠룡 시인 박해람의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민음사)

박해람

196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 가는 사내』가 있으며 현재 ‘천몽’ 동인으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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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문체로 늘 주목받는 시를 써온 시인은 역설적으로 '찬란함은 오히려 허무의 그늘'이라고 말한다. 첫 시집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만의 시세계를 창출해 나가는 박해람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기대의 박수와 함께 소개한다.

(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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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핀다 적고 꽃 진다 노래하는 

역설의 풍경과 봄날의 진실


 

죽음의 빛으로 생의 이면을 비추는 박해람 시인이 9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시집

 

“이미지의 돌연한 결합과 통사의 생산적 혼란이 속출하고,

인간과 자연이 기이하게 한 몸이 되는 이종교배의 현장” -이영광(시인)


 

정교한 관찰력과 견고한 묘사력으로 정평 난 시인 박해람의 두 번째 시집 『백 리를 기다리는 말』이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 가는 사내』가 삶의 다양한 오브제로 죽음에 대한 상상과 성찰을 표현했다면 『백 리를 기다리는 말』은 봄날의 풍경에 집중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백 리를 기다리는 말’, ‘독설’, ‘피크닉 트레일러’ 등 3부로 구성, 모두 60편의 시를 담은 이번 시집은 만개한 꽃이 낙화하는 봄날의 풍경을 극도로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거짓 같은 언어로 표현했다. 만물이 탄생하는 생명으로서의 봄이 아닌 절정을 지난 것들이 소멸하는 죽음으로서의 봄에 주목, 아름다운 봄날에 숨겨진 진실한 풍경을 특유의 묘사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풍경화와 추상화의 매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박해람 시의 절정을 맛볼 수 있는 시집이다.

 

■봄, 죽음의 계절

박해람 시에서 봄은 독자적이다. 겨울 다음에 오는 것도 아니고 여름 앞에 오는 것도 아니다. 『백 리를 기다리는 말』에서 봄은 오직 꽃이 진다는 점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눈물 같은 개화가 절정에 이른 때이기 때문에 봄인 계절, 살아 있는 것들이 자기의 생명을 끌어올릴 대로 끌어올려 그 정점에 이를 때 터져 버리기 때문에 봄인 계절, 결코 말릴 수 없는 개화들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에 봄인 계절. 생명의 이미지에서 죽음을 부르고 미(美)의 이미지에서 추(醜)를 발설하는 박해람의 시는, 눈에 보이는 ‘시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끝’을 보는 견자의 언어이자 피안의 문학이다.

 


 

모든 눈물은 소용돌이를 거쳐 나온다.

너무 추운 철에 핀 슬픔

다 마르면 뚝, 하고 떨어지는

가장 먼저 흘리는

꽃이라는 봄날의 눈물

-「봄날, 꽃이라는 눈물」에서

 


 

 ■암흑을 묘사하는 시

삶의 뒷면에는 죽음이 있다. 뒷면일 뿐이므로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둘은 동시에 존재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두 세계를 모두 살아야 한다. 한 발짝 살고 한 발짝 죽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시인이 이쪽을 보며 저쪽을 노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벚꽃 나무의 고향은 이쪽의 봄이 아니라 저쪽의 겨울’ (「벚꽃 나무 주소」)이 되고, 박해람 시를 읽는 우리 또한 소생의 계절에서 일생의 끝을 보게 되는 시인의 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검정, 암흑에 대해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색깔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긍정의 시선에 다름 아니다. 암흑의 핵심에는 절정의 빛이 있다는 것을 60편의 시가 말해 준다.


 

벚꽃 나무의 고향은

저쪽 겨울이다.

겉과 속의 모양이 서로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들이다

봄에 휘날리는 저 벚꽃 눈발도

겨울 내내 얼려 두었던 벚꽃 나무의

수취불명의 주소들이다

-「벚꽃 나무 주소」에서


 

■작품 해설에서

『백 리를 기다리는 말』은 꽃이 만개하여 지는 계절을 담은 시집이다. 꽃이 무르익었기에 만춘(滿春)이되 꽃이 이미 다 졌기에 만춘(晩春)인, 어쩔 수 없이 피어나 허공에서 흔들리고 결국에는 분분히 떨어지는 이 지상의 모든 존재들, 죽음의 장 위에서만 찬란하게 빛나는 이 환한 날들이 충만하게 담겨 흔들린다. — 박슬기(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꽃과 나무와 벌 나비의 공방에 “바람”의 공장(工匠)이 산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낡은 자연과 더불어 그는 백 리 밖으로, 혹은 제 마음의 백 리 깊이로 물러나 있다. 몸피에 어울리지 않게 섬섬옥수를 쥔 이 ‘쟁이’는, 문명의 뒤켠에서 주워 모은 조수충어(鳥獸蟲魚)들을 지극정성으로 매만진다. 그래서 속절 무성한 현실의 백 리 허를, ‘늑대의 꼬리가 몸을 저어 가듯’ 오가며 무수히 바람의 붓질로 물들여 놓는다. 그가 낯익은 유추를 거부하므로 우리는 오래된 관념들이 더 오래된 사물들과 자리를 바꾸고, 인간과 자연이 기이하게 한 몸이 되는 이종교배의 현장을 보게 되는 것. 이 현란한 상상력의 비거리들 안에는 이미지의 돌연한 결합과 통사의 생산적 혼란이 속출한다. “몇 개의 단장이 지나간 흔적” 둘레에 가시 울을 치고, 위리안치 속에서 바깥의 모진 “악필의 문장”들을 견뎌야 하는 박해람 공방의 전언은 그러나, 심중하되 비근한 마음의 안부이다. ‘오십 리를 기다리다 오십 리를 마중 나가는’ 발걸음이 그러하고, 이편에선 ‘가는 길을 지우고’ 저편에선 ‘오는 길을 지워야’ 하는 쓰라린 단념 역시 그러하다. 이것은 우리가 줄곧 다른 말로, 그리움이라 불러 오던 것이다.—이영광(시인)

 

짐짓 풍경과 거리를 두고 있는 척하지만 진득하게 한 몸이 되어 시인만의 난전(亂廛)을 펼쳤다. 누군가에겐 독설로 들리고, 누군가에겐 연서로 읽힐 것이다. 다만 이 척서(尺書)는 쉽게 해독되지 않는 기질이 있다. 자연과 인간, 시절과 지점을 문어와 구어가 어우러진 절조로 엮어, 오십 리를 착목하다 보면 다시 오십 리를 탐독하게 되는, 그렇게 백 리를 기다려야 시인의 심중을 얻을 수 있다. 은연중 허무의 화색을 내비치는 시편들인 것이다. 시인이 “저 왁자한 며칠은 죽은 이로부터 빌려 오는 기간이 아닐까”라고 말했을 때, 봄날 “꽃가루의 효능은 허튼 꿈”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얼마만큼 부정할 수 있을까. 묘약도 없이 시인의 미열을 짚으며 “병서”를 읽는다. —윤의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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