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간에 대학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밤늦게 퇴근 할 때면 가끔 옛 시절이 생각난다며 전화를 주던 후배이다. 왠지 후배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고 한다. 가정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앞만 보고 일했던 곳을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한다.

 

항상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주 이야기 해왔던 그 후배의 전화목소리가 오늘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다. 치열한 삶을 살면서 수십 년 동안 함께 했던 모든 것이 이제 한 조각의 추억으로 남는 듯 했다. 어디 그 만의 문제뿐이랴. 이런 허무를 느끼는 것은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공통적인 애환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의 인구비율이 2000년에 7%로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다. 2018년에는 14% 이상, 2026년에는 20%를 초과하여 초 고령 사회가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5세 이상의 인구가 경제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5-63년생은 이미 2008년부터 본격적인 퇴직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고속성장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도 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마땅한 재취업의 기회가 적은 많은 퇴직자들이 자영업에 뛰어 들고 있다. 조금 모아 놓은 퇴직금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는 2013년 7월 기준으로 575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 2,500만 명의 22.6%에 달한다. 무급 가족 종사자를 포함할 경우 700여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업종별로 보면 30% 이상이 도‧ 소매업이고, 음식, 숙박업이 30%를 넘는다. 이는 OECD국가의 평균 2배 수준으로 이미 과포화 상태가 되어 자영업자 간의 경쟁이 치열한 구조로 밝혀졌다.

 

신규창업은 매년 90여만 개의 자영업이 창업되고, 85여만 개가 폐업을 하고 있다.(2011년) 대부분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하는 무모한 창업으로 창업 후 생존율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창업 후 5년 생존율이 소 상공인은 43%, 도소매의 경우 37%, 음식업종의 생존율은 27%에 불과하다. 특히 창업이 손쉬운 음식점, 주점, 유흥서비스 업은 3년 이내 휴폐업이 절반을 넘는다. 더구나 10년 생존율은 11%도 안 된다.(KB금융지주연구소조사)

 

북유럽국가보다 훨씬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미국인들의 노후 생활만 해도 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미국인들은 우리처럼 현금으로 주택을 장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할부로 집을 장만하지만 30년 정도면 모두 할부가 끝나고 자기 집이 되어 부담이 없어진다. 또한 자녀들을 18세까지 부양하고 나면 자녀에 대한 큰 부담도 없어진다. 자녀가 대학을 가는 경우 각종 할인, 장학금은 물론 국가에서 받는 학자금 융자로 모두 해결한다. 결혼 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더욱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 열심히 일을 해서 세금(사회보장연금제도인 사회복지세)을 납부하면 국가는 그 세금에 비례해서 노후 자금으로 연금을 제공한다. 열심히 살면서 세금을 많이 내면 그만큼 연금을 많이 받는 것이다. 때문에 탈세를 하기 위해 갖은 머리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한 납세자의 의무를 권리로 내세우기 때문에 성취감마저 있다. 미국인들은 애국을 하는 길은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 또한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 고유문화의 영향이 크지만 자녀부양, 교육은 물론 심지어 결혼, 결혼 후 자녀 주거까지 걱정해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을 다하고 나면 부모는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이것이 노후에도 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우리도 경제대국으로서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만큼이나 삶의 질이 향상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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