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가 또 바뀐다. 이번에는 누가 유리하다는 하마평도 없다. 신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온통 되지 않을 사람들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청문회를 앞둔 경험칙에서다.

 

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강만수는 조선일보 기고문을 통해서 “유덕(有德)한 원로를 총리로 모시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했다. 그는 기획재정부장관을 했기 때문에 국가예산을 주무르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그가 본 국무총리는 왕조시대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이 아니며 시쳇말로 ‘국정의 2인자’도 못된다. 그 자신이 총리실을 뛰어넘어 청와대에 먼저 보고했다고 실토했다. 그는 총리를 사실상 주요정책에 대한 결정권도 없고 별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폄하한다.

 

그가 국회의원들도 예산철만 되면 절절 기는 주요부처의 장관이었기에 총리정도는 무시했다는 현실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씁쓸한 발언이다. 총리는 과거부터 ‘대독총리’ ‘방탄총리’의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실권이 크지 않다는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권들은 국무총리라는 ‘큰 자리’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용인술(用人術)을 펼쳐왔다.

 

특히 박정희와 전두환 등 군사독재정권은 극열하게 분열된 지역감정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총리 임명권을 행사했다. 영남정권으로 이어지는 장기집권을 ‘호남총리’로 둔갑시켜 대리만족을 시켜온 것이다. 정책결정에 있어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한 총리지만 그의 계급은 대통령 다음으로 높다.

 

국무회의를 주재하기도 하며 외국순방에 나가게 되면 유럽형 내각책임제 국가의 총리 격으로 인정하여 의전 상 ‘정상예우’를 받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모든 주요행사의 최고의전 대상이다. 국민들이 볼 때 총리는 대통령보다 한 수 아래일 뿐 장관이나 부총리보다는 훨씬 높은 지위로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적인 권력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로 오해할 소지가 크다.

 

이런 심리를 독재자들은 잘 선용하여 지역감정을 완화하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헌법상 총리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장관 임명에 대한 제청권을 갖는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총리가 제청(提請)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장관을 임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오래되었지만 사문(死文)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장관을 내정한 후 총리는 도장만 찍어왔다.

 

이 문제로 위헌여론이 형성되자 요즘에는 “이 사람을 제청하시오” 귀 뜸해주고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췄다. 아무튼 총리는 장관 제청권을 임의로 사용할 수 없다. 자칫하면 법대로 하겠다고 하다가 ‘대통령과 마찰로 얼마 가지 못하는 총리’로 전락한다. 이처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장관 제청권조차 행사할 수 없는 총리에 대해서 왜 국민들은 큰 관심을 쏟는 것일까.

 

이번에 성완종의 저주로 물러난 이완구는 청문회를 앞두고 온갖 비리·부정문제로 낙마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가 원내대표시절 야당과의 원만한 타협과 합의정신을 발휘한 것이 주효하여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더 큰 응원은 충청도민에게서 나왔다. 충청도 총리를 열망하는 충청민심은 충청출신 야당의원들에게 큰 압력이 되었다.

 

충청포럼을 이끌던 성완종은 충청도내 각 고을 마다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이완구 충청도총리 민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가 자살직전 이완구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했다는 전말의 사정을 본다면 그가 쓴 돈과 현실과의 괴리(乖離)를 엿보게 한다. 권력이 있던, 없던 간에 총리는 아직도 지역주민들의 ‘대리만족’ 대상으로 부각된다.

 

강만수는 새로운 총리가 고유의 행정업무가 아니고 비교적 관심이 적은 여러 위원회의 업무에 전념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갈등이 심해가는 사회를 통합하여 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강화하는 원로(元老)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돈과 권력을 멀리하고 살아온 유덕한 원로가 총리를 맡아 ‘국정의 2인자’가 아닌 ‘사회통합의 1인자’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총리는 문자 그대로 핫바지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형식상으로라도 결정사항에 도장도 찍고 제한적이나마 영향력도 행사했다. 헌법은 총리의 권한을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으며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징검다리 역할이나마 해왔다고 생각한다.

 

총리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총리는 계륵(鷄肋)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개헌특위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하다. 이원집정부제냐, 4년 중임의 대통령중심제냐 하는 정체(政體) 논의가 활발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현재의 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재오를 중심으로 한 이 개헌운동은 이미 개헌국민연대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무총리의 위상은 개헌을 통해서 그 위상을 정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자유당시절 이시영은 부통령직이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고 말하며 사퇴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 국무총리의 위상은 계륵이나 시위소찬이지만 ‘수첩’ 속의 인물만으로 채우기에는 상징성이 크다. 새로운 총리는 극도로 대립하고 분열되어 있는 국론을 통일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국가기강을 확립할 수 있는 대찬 인물을 발굴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무총리를 총리답게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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