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신주영기자]삼성전자가 최근 삼성SDS와의 합병설을 공식적으로 일축한 것은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의 끈질긴 공지(notice) 요구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삼성과 업계에 따르면 한 IR 전문가는 "삼성이 스스로 오너 일가와의 협의를 거쳐 합병 루머를 부인했을 리는 만무하다. 상당수 기관투자자에게서 (합병설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요구받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IR그룹장 이명진 전무는 지난 3일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인베스터즈 포럼(Investors Forum)을 마무리하면서 "시장에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 루머가 있는데 계획이 없다. 이 발언으로 루머를 잠재울 순 없겠지만 경영진 입장을 (시장에) 확실히 전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 IR 관계자는 "합병설과 관련해 그린메일이 쇄도하기 직전 단계에서 삼성전자 IR팀의 해명이 나온 걸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린메일(green mail)이란 경영권을 위협하는 투자자가 대주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블랙메일과 달러 색깔인 녹색의 합성어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상장한 삼성SDS의 주가가 고평가된 상황에서 합병비율이 불리해질 것을 감지한 삼성전자 기관투자자들이 나서 조기에 합병 루머 확산을 차단한 것으로도 분석했다.

 

이어 지난 4일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계획안이 불공정하다며 사실상 합병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율을 4.95%에서 7.12%로 확장함으로써 국민연금(9.79%), 삼성SDI[006400](7.39%)에 이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 다른 주주인 일부 중견기업에서도 삼성물산 합병비율이 불리하다는 데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주주들의 동향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 측은 일부 주주의 반대에 대해 "이번 합병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걸로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비율은 시장의 현재 평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주주들과의 소통에 주력하면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계획은 양사의 주가 흐름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해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으로 시장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일부 헤지펀드의 입장 표명도 시세차익을 겨냥한 일종의 '먹튀 전략'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결의 발표 직후부터 흘러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 지분(11.26%)을 삼성전자 지분으로 전환하거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합병이 진행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와 삼성SDS를 합병할 경우 오너일가와 삼성전자 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삼성SDS 주가가 충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합병하는 건 오너일가에 돌아가는 실익이 그다지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과 달리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 추진은 훨씬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의 난제를 풀기 위해 대대적인 주주 친화정책을 들고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현대자동차가 지난 3월13일 정기주주총회에서 검토 방침을 처음 언급한 '거버넌스위원회'의 설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거버넌스위원회란 외국인 기관투자자를 비롯해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두루 반영할 수 있게 돕는 기구다. 거버넌스(governance)란 여러 구성원의 분권통치를 뜻하는 개념이다.

 

현대차 지분을 보유한 네덜란드 연기금 자산운용사 APG의 요구로 현대차는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거버넌스위원회 설치 검토를 언급한 바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삼성동 한전 부지 입찰에 10조5천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투자를 결행했지만, 이로 인해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말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란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독단적 오너 경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미"라며 "거버넌스위원회 같은 기구의 설치를 통해 다양한 주주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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