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있던 탑 부재 상층 부식토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발견

[중앙뉴스=박미화기자]  울산박물관 사적조사팀은 현재 조사 중에 있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율리 영축사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4호) 발굴조사 현장에서 ▲청동시루(靑銅시루), ▲청동향로(靑銅香爐), ▲청동완(靑銅盌) 등 고려시대 유물을 일괄 수습하였다고 밝혔다.


출토 유물은 동탑 부재(部材) 정밀 실측을 위해 무너져 있던 탑 부재들을 옮기고 상층 부식토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출토 위치는 동탑 동북쪽 모서리에서 동쪽으로 2m 떨어진 지점이다. 거꾸로 엎은 청동시루 아래에서 향로가 넘어져 반쯤 걸친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시루 안에 꽉 차있던 충전토 내부에서 청동완과 시루의 나머지 손잡이 한쪽도 같이 출토되었다.

 

출토 상태는 지름 50cm의 구덩이를 파서 청동향로를 놓고 그 위에 뚜껑 용도로 청동완을 덮고, 그 위에 다시 청동시루를 덮어서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시루>사찰유적에서 발견된 시루는 주로 불교 의식 때 떡이나 밥 등을 쪄서 불전에 바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시루의 크기는 높이 24cm, 입지름 42cm , 바닥지름 37cm이다. 몸체는 원통형이며 구연부는 살짝 벌어지고 동체부 중간 지점에 두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고 시루 바닥에는 2단으로 구획을 짓고 안상문(眼象文)을 투공 하였다. 바닥에 몇 군데 수리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청동제 시루가 출토된 예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흙을 빚어 만드는 토제시루(土製시루)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청주 사뇌사지(思惱寺址)에서 고려시대 청동시루가 출토한 예가 있으나 출토 당시 완전히 파손된 상태로, 영축사지 출토 청동시루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완형(完形)으로 발견되는 가장 이른시기의 금속제 시루로 볼 수 있다. 특히 바닥부분의 형태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보존과 연구 가치가 매우 크다.


현재 완형으로 남아 있는 청동시루는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으로 범어사명 유제시루(梵魚寺銘 鍮製시루, 부산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양산 통도사 소장 청동시루(通度寺 靑銅시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화성 용주사 청동시루(龍珠寺 靑銅시루,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156호) 등이 있다.


<청동향로> 향에 불을 붙여 연기를 발산하는 것을 소향(燒香)이라 하는데, 불교에서 소향은 발산하는 향을 부처님의 사자(使者)로 인식하여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권청(勸請)의 의미로 사용되어 사찰에서는 향과 향로가 필수적이었다.


영축사지에서 출토한 청동향로의 크기는 높이 25.7cm, 바닥지름 23.5cm이다.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원형받침 위에 향로의 몸체(爐身)가 얹혀 있는 형태이며, 다리, 받침, 몸체 부분을 따로 주조(鑄造)하여 각각 3개의 못으로 고정하여 완성하였으며.세 개의 다리는 동물의 발 모양으로 정교하게 제작하였으며, 원형 받침 위에는 단을 만들어, 6개의 안상문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6개의 원문(圓文)을 배치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제작기법 및 형태 등으로 보아 현재까지 발견된 향로 중 비교적 이른 고려전기(11~12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청동시루의 시기도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등을 감안하여 본다면 향로와 동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국내 청동향로 중 출토지가 명확한 것으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봉업사명 청동향로(奉業寺銘 靑銅香爐, 보물 1414호)가 대표적이며, 청주 사뇌사지 출토 청동수각향로(思惱寺址 靑銅獸脚香爐) 및 서울 도봉서원 출토 청동수각향로(道峯書院 靑銅獸脚香爐) 등이 있다. 이외에 출토지가 불분명 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등이 알려져 있다.


영축사지 출토 청동향로는 몇몇 알려진 사례가 있긴 하나, 출토지가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장식이 화려하고 제작 기법이 정교하며 완성도가 높아 시루와 함께 가치가 큰 것으로 보인다.

 

<청동완>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청동제 그릇 형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완은 매납 당시 향로의 뚜껑으로 전용(轉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름 15.5cm, 높이 9.5cm로 굽 부분이 약간 손상되었으며.영축사지 출토 청동 일괄 유물은 고려시대 전기 영축사의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3점의 유물이 일괄로 발견되어, 청주 사뇌사지, 경주 망덕사지(望德寺址), 서울 도봉서원과 같은 퇴장 유물(退藏遺物, 유물을 의도적으로 묻는 것으로 제사나 의례처럼 종교 신앙과 관련된 경우도 있으며, 전란이나 그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약탈에 대비해 몰래 묻어두고 떠나는 경우)과 같은 성격이라면 영축사의 폐사(廢寺)와 관련된 유물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광섭 울산박물관장은  이번 유물 출토로 인하여 자료가 부족했던 고려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이해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율리 영축사(靈鷲寺)는 『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대(683년) 창건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사찰로써, 울산의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울산박물관은 총 5개년 계획으로 2012년부터 연차적으로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4차 조사가 진행 중이며. 3차까지 조사 결과, 영축사지는 강당-금당-동·서탑-중문-회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의 사찰임이 확인되었으며, 사역의 규모가 경주 감은사에 버금감을 확인하였다. 


주요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金銅佛像) 2점, 석불좌상(石佛坐像) 1점, 약사불이 장식된 광배(光背) 편, 문자가 새겨진 비석편 3점, ‘영축(靈鷲)’, ‘대관(大官)’, ‘삼보(三寶)’, ‘대천십구사평팔천왕(大天十九四平八天王)’ 등의 문자가 있는 평기와를 비롯한 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류 다수가 출토되었다. 


울산박물관은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영축사의 창건-중창-폐사 과정과 석탑 축조방법 등을 확인하여 영축사의 역사적 위상을 밝히고 통일신라시대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의 중요자료를 확보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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