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보편적인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 불안해하지 않는다.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잘못되면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닥치는 운명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정말 일어 날 것 같지 않던 일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 아니 온 나라를 초토화 시키는 분위기마저 감돈다. 바로 메르스(MERS)라는 전염병이다. 지난 2003년에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해 홍콩과 중국을 거쳐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를 강타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SARS)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중동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일명: 낙타의 감기)라고 불리는 이 전염병은 지난달 20일 우리나라에 첫 환자가 발생하였다. 바로 그 뒤 특정병원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벌써 사망자(6월 16일자)만 19명이다.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하고 전염사태가 심각해지자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들이 방한하여 지난 9일부터 정부와 합동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지난 13일 한국에서 전염이 빠르게 발생한 원인에 대해 현지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인의 병원문화를 꼽았다. 우선 의사의 소견을 믿지 않고 여러 병원의 의사를 찾아다니는 의사쇼핑문화, 응급실 과밀화와 다인실 사용으로 인한 병원 내 감염, 의료진의 메르스에 대한 정보 부족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모 TV방송국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상시 문병, 가족의 병원 내 거주 간병 등을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가족이 간병을 하면서 외부음식을 반입하여 식사를 해결하고, 아예 병실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필자도 문병을 위해 모 병원에 방문했을 때 다인실에서 환자가 술과 안주를 배달시키는 것을 본적도 있다.

 

이런 병원문화는 우리에게는 이미 관습이 되었다. 선진국의 잣대로 볼 때 이것을 후진국의 특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16일 독일에서도 메르스 환자가 1명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더 이상 감염자가 없다고 한다. 단지 이런 측면에서만 보면 우리 병원문화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척도로 보면 우리 병원문화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의 후진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도시 골목의 쓰레기 문제, 음주로 인한 물리적인 충돌, 과도한 음주 후 토한 흔적들도 곳곳에 눈에 뛴다. 또한 한 치 양보 없는 교통문화, 심지어 보복운전 등도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어 오면서 미처 정제되지 못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상대주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문화에서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문화가 반드시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서구화된 삶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보되고 있다. 우리의 의식주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서구화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질적인 측면에서 더 편리하고, 더 좋은 삶을 위해 세상은 자꾸 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고유한 문화일지라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것은 과감히 쇄신해야 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지금은 혁신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승자는 오직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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