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마그나카르타가 발표된 지 800년이 되었다. 마그나카르타는 영국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모든 나라들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헌장 역할을 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연성헌법에 의한 군주제를 실시하면서도 의회제도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민의 슬기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이념구현을 위한 착실한 성장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미군정 3년을 거친 후 이승만이 정권을 장악하고 6.25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제2대국회의원 총선거는 실시되었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운 이승만은 국부(國父)를 자처하며 왕조시대나 다름없는 전횡을 일삼았다.

 

그가 집권한 12년 동안 발췌개헌안, 사사오입개헌, 삼선개헌 그리고 정치파동 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헌법파괴 행위가 자행되었다.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3.15부정선거는 결국 스스로의 묘혈(墓穴)을 파는 암수가 되어 4.19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4.19혁명은 전국의 대학생들과 고교생들이 주도한 혁명이었지만 그 과실은 야당인 민주당이 차지했다.

 

신구파로 갈라진 민주당은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한 후 국무총리에 장면을 선출했으나 우유부단한 성격 탓으로 1년도 견디지 못하고 5.16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정권을 내준다. 5.16주체인 박정희는 약속했던 민정복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통령에 올라 무소불위의 18년 독재를 자행한다.

 

그는 목숨을 건 쿠데타를 강행할 만큼 두둑한 배짱으로 한일협약을 체결하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가 하면 베트남전쟁에 연인원 30만 명의 군인을 참전시키기도 한다. 야당의 극열한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포항제철을 건설하여 기간산업의 틀을 잡는다. 이러한 정책시행은 굴욕적인 한일협약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6.3시위를 촉발시키며 반전(反戰)운동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사회간접시설이 전혀 없었던 한국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촉매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업적이 되었다. 세계최빈국에 속했던 한국이 이러한 경제성장에 따라 가장 활성화된 열정의 나라로 변했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과정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철저히 짓밟혔다. 삼선개헌과 유신헌법의 망령은 야당을 초토화시키고 저항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긴급조치를 발동시켜 민주화운동에 몸 바친 양심적인 학생,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 정치인등을 무차별적으로 감금하고 살인적인 가혹행위로 최소한의 인간 자존심마저 깔아뭉갰다.

 

박정희정권은 정치적으로 야당과 언론탄압을 능사로 했지만, 고도경제성장정책으로 기간산업을 육성하여 국민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공과(功過)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정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10.26시해 이후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5.18광주항쟁을 진압하고 역사상 유례없는 독재를 자행했으나 6월 항쟁에 의해서 드디어 우리는 민주화를 성취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민주화운동 과장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분열되지 않았지만 막상 민주화를 이룩한 과실은 온통 진보세력의 독차지가 되었다.

 

그들의 진영논리에 따른 갈등은 사사건건 마주친다. 정쟁으로 인한 경제침체는 매우 심각하다. 어쩌다가 나라꼴이 이렇게 되었는지 한숨짓는 소리가 곳곳에서 요란하다. 그 두드러진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국회에서 찾으면 된다.

 

우리 국회는 300명의 선량으로 구성되어 국리민복을 위한 입법 활동과 국정감시에 여념이 없다. 능력 있는 인물들이 지역구에서 당선하거나 비례대표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런데 몇 년 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별명이 붙은 국회법이 개정되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이면 의결이 가능한 국회본회의 의결권이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만 의결될 수 있도록 고쳐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헌법학자들이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다. 새누리당 황우여원내대표가 주도하고 박근혜비대위원장이 찬성했던 것이어서 논란을 일으켰으나 얼마 전 새누리당은 그 폐해를 인식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국회에서 공무원 연금법개정과 연계하여 통과시킨 국회법개정안이 또다시 위헌논란에 휩싸였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시행세칙에 대해서 국회가 ‘요청’하면 그 처리결과를 반드시 국회상임위에 보고하도록 ‘강제한’ 규정 때문이다. 강제가 아니라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앙탈은 별로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박찬종은 ‘헌법원탁회의’를 제창했다.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헌법전문가를 초치하여 그들의 의견을 사전에 청취하라는 주문이다. 가뜩이나 불통이라는 청와대에 대해서는 단비 같은 제의다. 여야를 막론한 헌법 전문가들을 모조리 불러 정치이해를 떠난 양심적인 목소리를 들은 다음 거부권 행사여부를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한번 만든 법을 국회 스스로 고치기는 어렵겠지만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결단에 대해서는 수긍해야만 한다. 국회법이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대원칙을 국회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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