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제도를 폐지한 나라도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형 제도를 유지한다. 사형이란 반사회적인 범죄자에 대한 가장 가혹한 응징수단이다. 살인범죄자에 대해서 그에 걸맞은 응보 형으로서 사형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다만 사법부에 의해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사람 중에서는 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한 사람, 사상적으로 정치체제에 대한 이념투쟁을 한 사람,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강요된 신앙을 거부한 사람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확신범’들이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핀 자유주의 세계에서는 그런 문제 때문에 세계의 눈총을 받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라가 거의 사라졌지만 공산독재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을 비롯한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의 독재국가들은 지금도 체제 반대자라는 이유 하나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우리는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반인권적인 정치범 탄압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생생한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다. 탈북자들에 대한 공개처형은 물론이고 김정은의 최측근이었던 장성택이나 현영철 이 무자비한 고사총 총살이라는 극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몸서리를 처야 했다. 그들은 오직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재판절차도 없이 사형이 집행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인권 존중국가에서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여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으나 정작 우리 국회는 발의된 지 10년이 넘는 북한 인권에 관한 법률안이 야당의 반대로 발목이 잡혀 있다. 북한의 공개처형은 공포분위기 조성으로 허약한 정권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국제 엠네스티위원회는 정치범 또는 확신범에 대한 사형중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봉암과 인민혁명당 사형과 같은 체제 반대자들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던 아름답지 못한 전례가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는 근자에 재심을 통해서 모두 무죄판결로 사후복권을 실현했으며 유족들에게는 막대한 피해보상을 지불했다.

 

이처럼 확신범에 대한 사형집행은 국가권력의 남용이 빚어낸 정부의 큰 과오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제도가 전면적으로 폐지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들어가면 많은 논란이 나오게 된다.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까지도 살려두는 것이 과연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정치인 종교인 등 다양한 직책여하에 따라서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생명관, 철학관 등 입장에 따른 차이가 크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종교인들은 대체적으로 화해와 관용 그리고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며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 역시 국민의 표를 의식하는 사람들이어서 종교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 본인의 진심과는 달리 의견표명을 보류하거나 잠재적 반대자가 될 소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직책에 상관없이 사회의 가장 큰 구성원인 일반국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에 일본에서의 흉악범 사형집행은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어 시사하는 바 크다. 일본 법무성은 6월25일 나고야 구치소에서 살인범 ‘간다’의 교수형을 집행했다. 2007년 공범 3인이 합세하여 젊은 여성의 현금카드를 빼앗고 “살려달라”는 애원을 뿌리치고 비닐을 씌운 후 망치로 가격하여 잔혹하게 살해한 범죄자다.

 

공범 2명은 무기징역을 받았고 주범만 사형이 확정되었는데 8년 만에 사형집행이 이뤄진 것이다. 일본에서는 현재 129명의 사형수가 유치되어 있으며 우경화한 아베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도 일곱 차례에 걸쳐 12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이번에 사형을 집행한 것은 피해자의 어머니가 끈질기게 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법이 왜 가해자를 보호하고 있는가.

 

피해자의 눈높이로 심판해 달라”고 하면서 법대로 사형을 집행해야 된다는 국민 서명운동을 벌여 5년 동안 무려 33만 명의 서명을 받는 호소력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사형수 간다는 단 한 사람만 살해했기 때문에 일본 법무성의 관례에 따라 집행연기가 가능했지만 국민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일본정부는 국가기강 확립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실정은 어떠한가.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가 현재 57명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1997년 이후 일체의 사형집행이 중단되어 무기징역이나 다름없는 수형자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18년 동안 사형집행이 안 되고 있어 잔인한 살인범들이 교도소에 우글거리며 빨간 표지를 가슴에 붙이고 계급장처럼 거들먹거린다.

 

사형수에 대해서는 교도관들도 한 수 놔주는 형편이며 재소자들은 아예 꼼짝하지 못한다. 막가는 인생인데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했던 잔혹 살인범들이 큰소리 칠 수 있는 여건은 사형집행을 하지 못하는 허약한 정권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것은 공권력이 무시되고 국가기강이 흩으려지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18년 전의 대통령 뜻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것은 차라리 사형 제도를 정식으로 폐지한 것만도 못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은 국민의 치소를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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