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신문 중에서 독자도 많고, 영향력이 큰 신문이라면 대부분 조·중·동을 꼽는다. 이들 3개신문의 독자가 전체의 75%라고 하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모두 보수에 속하며 이들에 비해서 사세가 약한 한겨레나 경향은 진보적이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가장 극우적인 기사와 논설을 많이 내보내는 신문이어서 진보계열에서는 조선일보 불매운동도 펼친 일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보수 진보 매스컴이 따로 놀긴 하지만 종이신문의 쇠퇴와 사이버언론의 범람은 세대 간의 소통조차 어렵게 하는 일까지 생긴다.

 

그런데 6월29일자 조선에서는 1면 머리기사로 ‘외국 돕는데 5년간 3조4000억 쓴 한국’이라는 소제목 밑에 주먹만 한 활자로 ‘北주민 돕는 데는 2%(566억. 해외원조 대비 1.68%)도 안 썼다’고 대서특필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과거 진보적 정권 하에서 7조에 달하는 퍼주기를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던 신문이 느닷없이 “너무 적게 줬다”고 힐난하고 나선 셈이다. 이 기사는 시리즈기사로 ‘나눔, 통일의 시작입니다(1)’의 첫 번째 기획기사로 보인다.

 

모처럼 북한과 북한인민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득 담은 따뜻한 기사다. 북한을 돕기 위한 남한정부의 자세는 민주화 이후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김영삼정부는 20년 넘게 수감 중이던 국가보안법 장기수들을 대거 북한에 송환했으며 김대중정부는 햇볕정책을 내세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키며 가장 활발한 대북지원을 했다.

 

노무현정부도 꾸준히 지원정책을 펴면서 임기만료 직전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열어 김대중을 계승했다. 그 사이에 금강산 관광이 이뤄져 해상과 육상을 통하여 ‘그리운 금강산’은 대성황을 이뤘다. 게다가 개성공단까지 합의되어 북쪽의 값싼 노동력과 남쪽의 기술력·원자재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경제적 성취도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깨지기 시작한 단초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사살사건이다. 이 돌발사건은 새로 들어선 이명박정부에 대한 북한의 경고 메시지였다고 생각되지만 이명박정부는 원인구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는 북한에 대해서 금강산 관광중단이라는 초강경정책으로 맞선다.

 

이로 인하여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한 때 개성공단 조업중단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지금은 정상가동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3대째 세습정권을 이어가고 있으며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인하여 유엔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대북제재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정부 역시 ‘통일은 대박’이라는 구호 하에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운영하면서 남북통일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으나 꽉 막혀있는 남북관계는 틈새를 내주지 않는다.

 

침략과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일본과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것처럼 핵과 장거리 미사일등으로 무장한 북한과의 관계 역시 꽁꽁 얼어붙어 있어 원만한 해결 기미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럴 즈음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가 국민의 여론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한 것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경륜을 가진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한 덩어리로 “잘 살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북한은 50년 전의 남한처럼 세계 최빈국에 속해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주의 체제싸움이 미치는 경제적 문제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북한이 식량난에 빠졌을 때 300만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50만이 굶어죽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엔에서는 북한 돕기에 발 벗고 나서 많은 나라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스위스에서는 360억원, 스웨덴에서는 259억원을 지원했으나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한국에서는 겨우 566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합계보다도 적은 액수다.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장거리 미사일로 위협하지 않으며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등이 없었다면 남북은 화해무드를 유지하며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더 많은 지원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현금으로만 거래되던 금강산 관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엄청난 소득을 북한정권에 안겨주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최근 5년 간 외국에 3조37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주고 있다. 그들 나라들은 북한에 비해서 월등 많은 국민소득을 유지하는 나라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혜택을 스스로 박차버리고 오직 핵위협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이번에 개설한 유엔의 북한인권사무소에 대해서 극열한 언사로 박근혜대통령을 욕하고 있어 감정을 자극한다. 인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지상(至高至上)의 인격이다. 함부로 인명을 살상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는 통일의 걸림돌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대북지원을 퍼주기로 생각하지 말고 어차피 민족통일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라고 마음먹는다면 한결 편할 것이다. 우리는 민간부문의 지원, 스포츠 교류, 서신왕래, 이산가족 만남, 고위층회담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신뢰를 쌓아야 한다. 북한의 어깃장까지도 포용하는 것이 통일의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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