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7일 제67회 제헌절 기념식에서 정의화국회의장은 어느 국회의원도 앞장 서 꺼내지 않고 있는 개헌문제를 제기했다.

 

현행헌법은 1987년 개정된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으나 꿈쩍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되고 있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국회가 끝나기 전에 개헌발의가 있어야 한다고 확고한 신념을 토로한 것이다.

 

개헌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주장해온 개헌전도사 한 사람이 있긴 하다. 그는 은평구에서만 5선을 거듭하고 있는 이재오의원이다. 이재오는 과거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이명박정부에서는 특임장관까지 지낸 친이파의 거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박근혜정부 하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용인하고 있는 헌법을 고쳐야 된다는 주장은 자칫 친박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어 개헌 당위성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하여 활발하게 피력하면서도 직접 나서는 것은 신중을 기하고 있는 듯하다.

 

때마침 7월15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1.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2. 개헌추진국민연대 3. 시민이 만드는 헌법운동본부 등 3개시민단체가 공동주최한 제67회 제헌절기념 및 국회개헌특위 구성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제헌절 국가행사에 앞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개헌운동 전개를 선언한 것이다.

 

시민이 만드는 헌법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덕룡(5선의원), 개헌추진국민연대 공동대표 전대열(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의장 김형기(경북대교수) 등이 주제연설을 맡았다.

 

대한변호사협회 전 부회장 장준동이 진행경과를 보고하고 여성유권자운동의 핵심인 이연주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는데 모두 현행헌법이 새 시대의 비전에 동떨어진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 헌법학자 유진오에 의해서 기초되었다.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를 작정했으나 이승만은 이를 거부하고 대통령중심제로 고치도록 하여 자신이 의장을 맡은 제헌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제왕적 대통령은 이미 그 때 시작되었으며 발췌개헌안, 사사오입개헌안,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중임(重任) 조항폐지 삼선개헌안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언론에서는 헌법이 누더기로 변했다고 조롱했다.

 

권력이 너무 비대해지면 반드시 부패한다. 이승만정권은 12년 동안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권력만을 탐하다가 이승만의 4선을 꾀하는 3.15부정선거의 결정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일제 강점 하에서도 3.1운동의 선두에서 싸웠고, 광주학생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의 역사적 의기(義氣)는 여기서 빛을 발했다.

 

처음에는 고등학생들이 일어났으나 드디어 전북대와 고대를 비롯한 대학생들이 궐기하기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간 부정선거 규탄시위는 끝내 4.19혁명으로 연결되며 자유당을 무너뜨린다. 186명의 희생자와 65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희생의 대가로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4.19혁명 덕분에 공짜로 권력을 거머쥔 민주당정권은 고질적인 신구파 싸움으로 쉴 날이 없었다.

 

이 틈을 노린 박정희는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장면정권을 꺼꾸러뜨리고 권력의 좌에 오른다. 박정희정권은 새로운 헌법으로 민정에 복귀하지 않았으며 삼선개헌과 유신헌법을 통하여 확고부동한 장기집권 태세를 확립한다. 장준하는 민주통일당 최고위원까지 사퇴하면서 유신헌법 개정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불과 1주일 만에 30만 명의 서명을 확보하면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자 긴급조치 1호를 발동하여 장준하 등 민주통일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후 학생들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하여 민청학련 사건으로 4호가 나오고 이어서 9호 발동까지 장장 7년에 이르는 긴급조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 때 시중에서는 ‘막걸리 반공법’ ‘막걸리 긴급조치’라는 말이 남몰래 퍼졌다. 몸은 고되고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끼리 선술집에서 술 한 잔 나누다가 자신도 모르게 정부 불평을 쏟아내면 잽싸게 채어간다. 교도소에 아무런 정치적 의도 없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다.

 

10.26 시해이후 신군부에 의한 독재헌법이 등장했으나 6월항쟁에 따른 ‘직선제 개헌안’이 받아드려짐으로서 현행헌법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논란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거론되고 있지만 개헌 필요성을 인정하던 사람들도 정권만 쥐게 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돌아서고 만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작심하고 제헌절 축사를 통하여 개헌을 제안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그는 이번 국회에서 발의한 다음 내년도에 새로 구성될 국회에서 결의되어야 한다는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아주 시의적절한 제안이다. 박근혜대통령에게도 전혀 누를 끼치지 않는 일정이 될 것이다. 게다가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국민의 대표자인 남북국회의장이 한 자리에서 만날 것을 제의한 것은 과거에 한 차례 제안했던 것이긴 하지만 제헌절 공식행사를 통한 무게가 실려 한결 돋보였다.

 

국회 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처리, 세월호법 통과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처리한 쾌도난마식 의사진행이 국민의 갈채를 받는 이유가 다 이런데 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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