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섭 기자의 말말말>‘평화의 소녀상’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가 부끄럽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봉선화의 노랫말은 길고긴 날 여름철, 아름답게 핀 꽃을 어여쁘신 아가씨들이 꽃을 바라보면서 반겨 놀았다고 표현하고 있다.그렇게 아름답게 핀 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별수없이 시들고 망가지니 그 모양이 처량하단다.
  
일제는 1910년부터 36년간의 일제 강점 통치과정에서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병참 기지화 함으로써 사회와 민족이 정상적 발전을 하지 못하도록 왜곡하고 굴곡 시켰다.이런 와중에 1920년 가곡 봉선화가 발표되었다.

봉선화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처량한 모습을 ‘울 밑에있는 봉선화’로 표현했다. 노랫말이나 곡조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조국을 잃은 민족적 슬픔을 애수(哀愁)로 달래보는 구슬픈 노래였다.

 

일제가 패전국의 멍애를 쓰기 직전인 1940년대 초 반일사상을 심어주는 노래라 하여

일제는 우리민족 어느 누구도 입에 올릴수 없도록 가창 금지곡으로 만들어 버렸다.

 

올해로 광복 70돌을 맞는 우리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하지만 나라를 되찾은 지 어언 70년이 지났건만 대다수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일제로부터 받아내야 할 빛조차 받지못한채 세상을 떠나 후손된 자로 죄송스런 마음 금 할길 없다.

 

더이상 되풀이되서는 안될 역사앞에 선조들의 피값으로 만들어온 대한민국 광복 70주년을 자축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메르스라는 지독한 놈을 만나 경기마저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니 축하해야 할 광복 70년이 오히려 딴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광복 70년의 두 얼굴을 바라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지만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는데 왜 우리민족의 진정한 광복은 먼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가장큰 이유는 강대국 앞에서도 기를 펴지 못하는 초라한 우리 정부의 잘못때문이다.

광복을 기다리며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을 목놓아 불렀다.식민지 굴레를 벗고 겨레의 빛을 되찾은 그 날을 노래한 것이리라.

 

그날이 왔건만 한반도에는 빛과 어둠이 늘 따라다녔다.지긋지긋한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도 잠깐,한반도는 같은 민족으로 인해 어처구니 없게도 바로 허리가 잘리는 비극을 맞기도 했고 그 비극은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 끝을 이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길고도 먼길을 돌아 광복 70년의 아침이 밝았다.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세계 9위 무역대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헌신과 희생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결과다.

 

밀가루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넘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조국의 광복과 북한의 침략에 맞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위에 모든 국민이 잘살아 보자며 두팔을 걷어 붙인채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다.

 

“역사에는 마침표가 없듯이 침탈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범(戰犯)인 나라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우리가 독일을 선진국으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것은 그네들의 반성과 용서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범(戰犯)이면서도 용서를 받은 독일과 달리 지난 14일 발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는 우리 국민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게 했고 실망케 했다.전 세계 역사학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과 선진 우방국들이 일본 과거 침략사에 대한 아베 총리의 진심어린 사죄를 기대했으나 결국 거부당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아베 총리에게 무라야마 총리 담화(1995년) 등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고 분명한 언어로 표명해 줄 것을 촉구해 왔다.그러나 아베는 비웃기라도 하듯 전범(戰犯)으로서 책임져야 할 명확한 반성과 사죄 없이

‘말의 성찬’으로 일관했고 우리 국민들은 아베 총리 개인의 ‘감상문’을 들어야 했다. 아베는 오히려 한발 더 나가 패전국이 해서는 안될‘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식민지배와 침략의 주체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현 내각이 아닌 과거 내각의 입장을 빌려 ‘과거형’으로 사죄를 언급하는 꼼수를 부렸다.왜 우리정부는 반성과 사죄 없이 ‘말의 성찬’으로 일관한 아베 총리 개인의 ‘감상문’에 대해 보다 강력하게

항변을 못할까.항변은 커녕 조용하기만 하다.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 정부는 다른건 몰라도 위안부 문제 만큼은 묵과해서는 안된다.아베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사과없이‘존엄을 상처받은 여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한마디로 교묘하게 이 문제를 피해갔다.그런대도 우리정부는 괜찮은 모양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잘 알면서도 ‘평화의 소녀상’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힘없는 정부가 정말 부끄럽다.죽어서도 애국지사들의 얼굴을 어찌 볼꼬, 참담한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 아닐까?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순국선열 앞에 다시금 옷매무시를 여미자.광복 70년이 재건과 중흥의 역사였다면 앞으로의 70년은 번영과 전성(全盛)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잔인한 역사앞에 우리 국민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강인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뿐이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국내 경기 전망 또한 마이너스 성장으로 낙관적이지 않지만 대한민국은 분명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도 남을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들 이기에 여기서 멈출수는 없다.

 

피값으로 쟁취한 광복 70년을 반쪽짜리 광복에서 완전한 하나의 광복을 이루자. 통일한국을 세우고 선진강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더이상 망설이지말자.왜? 그 해답은 당신이 알기때문에..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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