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는 이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반도의 명소가 되었다. 남북한이 상호 포격을 주고받으면서 사실상의 전시사태를 선포하였으니 어느 쪽에서든 제대로 한방 갈겨대면 155마일 휴전선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것은 불문가지였다.

 

과거의 전쟁사례를 보더라도 사소한 것처럼 보이던 사건이 점차 커지면서 결국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번 사건도 휴전선 순찰을 하던 우리 국군 2명이 목함 지뢰를 밟고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중상을 입은 데서 비롯되었다.

 

목함 지뢰는 한국군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 폭탄으로 장마철에 북한 측에 매설되어 있던 것들이 급류에 쓸려 남쪽으로 내려와 부상을 당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이 지뢰를 몰래 매설한 장본인이 북한이었을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뢰폭발 지점이 북쪽보다 높은 곳이어서 홍수에 흘러 내려올 수도 없는 지형이다. 우리 군은 즉각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방지를 요청했으나 북한 측은 거꾸로 자작극이라고 떼를 쓰며 완강히 버티기 시작했고 적반하장으로 포격까지 가하며 위협했다. 우리 군은 원점을 파악한 후 대응사격을 하는 한편 그동안 중단했던 확성기방송을 재개하기에 이르렀다.

 

확성기방송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 군인들에게 자유분방한 남쪽 얘기와 노래 그리고 젊은이들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뉴스를 전해준다. 실제로 탈북자 중에는 이 방송을 듣고 남한을 동경하여 탈북을 감행했다는 실토를 하는 이들이 많다.

 

확성기방송으로 허를 찔린 북한 측의 당황한 모습은 극렬비난을 하면서 최후통첩 시한까지 통보한데서 잘 나타났다. 48시간의 시한은 재깍재깍 다가온다. 과거 김대중이나 노무현 이명박 정권 때 같았으면 아예 확성기방송을 재개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재개했다고 하더라도 최후통첩 시한이 다가오기 전에 중단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패턴을 잘 알고 있는 북한정권이 이번에도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단호했다. 국가안보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선 조치 후 보고’를 직접 명령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확고한 신념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다.

 

특히 김관진과 한민구는 안보실장과 국방부장관으로서 흔들림 없는 자세를 견지하며 전쟁불사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전쟁을 좋아해서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상을 잘 안다.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도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적의 협박과 공갈을 두려워하고 무서워 할 수는 없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다. 한발 양보하면 전쟁은 터지지 않겠지만 그 순간부터 남한정부는 북한정권의 노리개로 전락한다.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고 협박을 반복하면서 저들의 이익만 챙겨갈 것은 눈에 선한 일이다.

 

역대정권이 그동안 그들의 입맛에 맞게 고분고분 응해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똑같은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 군이 허약했기에 밀린 것이 아니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물러 터져서 생겨난 일이었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을 당하면서도 선제공격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부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북한은 당황했다.

 

전쟁을 벌일 수 없는 처지에 시한을 정해놨으나 남쪽에서 “어디 한번 쏴봐라”고 대들자 결국 2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다. 이 때 이미 승부는 갈라졌다. 3박4일, 회담시간만 43시간이라는 지루한 협상 끝에 그들은 몽매에도 하고 싶지 않은 유감표명으로 사과했다.

 

청와대 안보실장 김관진과 통일부장관 홍용표. 북쪽에서는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이 맞붙었으나 처음부터 저들의 사과 없이는 타결되지 않을 게임이었다. 만약 협상이 깨지면 곧바로 전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쉴 수도 없고, 배가 고파도 참아야 했을 것이다.

 

김정은 일인치하인 북에서는 회담도중 황병서가 평양까지 달려가 지령을 받았고, 청와대에서도 수시로 지시를 내렸다. 회담은 극적으로 6개항의 합의로 타결되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위기상황은 끝났다. 지뢰폭발에 대한 사과 후,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확성기방송은 중단하기로 했다. 회담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완전 항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원자폭탄을 터뜨리고도 일본천황제를 존속시킬 수밖에 없었던 미국을 보라.

 

이번 합의사항 중에는 이산가족 상봉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당국자 회담’이다. 당국자 회담은 정상회담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회담 당사자들은 그게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서울과 평양에서 회담을 열기로 한 것은 박근혜와 김정은의 만남이 아니고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두 정상의 공동관심사는 통일이다.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산가족 상봉도 필요하지만 1회성 상봉은 양측 체제경쟁 구실 외에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는 행사를 위한 행사임을 모두 다 알고 있다. 자유로운 편지왕래가 있어야 하며 개인의 상호방문도 허용되어야 한다. 체육 연예 학술분야 등 비정치적인 문화교류가 이뤄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남한의 경제력을 아낌없이 쏟아야 하며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등과도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평화통일의 기회를 마련하는데 이번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것을 제의한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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