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이현정 기자] 9월 4일과 5일 국립발레단은 재미난 시도를 선보였다.

 

한국 발레계의 취약점을 보완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발레계에서 한국 무용수들은 해외 콩쿠르를 휘저으며 메이저 발레단 주역으로 활동하는 데 비해 안무가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무용수들만큼 인지도를 갖춘 안무가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외국은 어떠할까.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영국 로열발레단,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등 여러 세계 유명 발레단들은 ‘상주안무가’ 제도가 있어 각 발레단 고유의 색깔을 지닌 창작물을 만들고 있다.

 

특히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1961년 안무가 존 크랑코(John Cyril Cranko, 1927~1973)가 맡으며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였다. '드라마틱 발레의 완성자'인 그는 1960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아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오네긴>, <카르멘> 등 여러 명작을 남겼다.

 

또한 모든 재능 있는 안무가와 무용수에게 문호를 활짝 여는 정책으로 지리 킬리안, 노이마이어 등 현대 최고의 안무가를 배출했으며, '발레의 유엔'으로 불릴 만큼 단원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발레 안무가는 장르의 특수성 때문에 학교가 아닌 프로 발레단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법인데 그 부분을 잘 녹여낸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 둘째 날, 다섯 번째 공연 박기현 '어둠속의 한줄기 빛처럼'    

 

그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해외 유수 안무가들의 작품을 가져다 공연하는 데 그친다. 2009년 ‘왕자호동’과 같은 창작발레도 오랜만에 나왔으나 사실상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지난해 취임한 강수진 단장이 칼을 빼들었다. 수석발레리나로 몸담았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제도에 착안해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를 진행했다. 지난 4일과 5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선보였다. 깜짝 이벤트처럼 연간 프로그램이 아닌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이번 공연에는 수석무용수 이영철 등 12인의 쟁쟁한 무용수들이 안무가로 나서며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발레계 관계자들의 평가를 받는 동시에 객석의 2층을 일반 관객에게도 무료 제공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강 예술감독은 "국립발레단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무용수뿐 아니라 그들이 출 수 있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줄 안무가가 필요하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주옥같은 작품과 멋진 안무가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9월 4일 네 팀, 9월 5일 다섯 팀 총 열두 명의 무용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독창성 추구를 위한 국립발레단의 노력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 둘째 날 공연 배민순 'Square Jail'    

 

특히 공연 둘째 날 두 번째 작품 배민순의 'Square Jail'은 관객들에게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스트레스’를 주제로 직장인의 압박감, 괴로움, 치열한 숨막힘이 여과없이 전달된 것. 발레하면 떠오르는 춤동작만 이어지는 무대가 아니라 한눈을 팔다 무대를 봐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했던 것이다. 슈트 차림에 빨간 넥타이의 무용수들이 산소호흡기와 음악을 절묘히 조화시켜 질식할 듯한 ‘스트레스’를 보여줬고 이에 관객들은 ‘앵콜’을 연호했다.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손에 잡힐 듯 설명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활동 기간이 짧은 무용수의 삶에 제 2의 인생을 꽃피울 수 있도록 안무가 육성에 힘쓰는 국립 발레단의 첫 도전이 하루라도 빨리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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