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학자

[인터뷰] 허성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성공회대 정문, 구두인 하우스 뒤쪽으로 보이는 새천년관 7층 연구실에서 여성운동 리더이자 NGO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을 맡고 있는 허성우 교수에게 어떻게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여성운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인터뷰 하였다.

- 언제부터 여성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고등학교 진학 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 실패, 재수를 하던 중 재수학원 수강 첫날 여자 화장실이 없는 것을 발견한 이래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으로서 겪는 여러 가지 불편을 경험하면서 ‘왜 이리 여성이 불편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이른 시기가 아닌가 싶다.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여성학에 관련된 책들이 없어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몇 가지들을 찾아내고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들과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여성학 동아리도 만들었다.


대전여민회 창립 후 사무국장, 공동대표 등 상근활동가로 일하다가 여성학 공부가 필요하겠다 싶어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의 의미심장한 지역차이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고 지역여성운동의 전망을 찾기 위해 영국 서섹스 대학으로 유학,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 후 바로  성공회대학에서 일하게 되었다.

 - 대전여민회 창립 멤버이시고 현재도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리더로 잘 알려져 있다. 유학시설 지도교수였던 바바라 아인혼 교수가 2006년 방문 시 대전여민회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한국 여성운동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는지?

그렇다. 좀 더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을 마친 후, 유학을 가려고 알아보던 중 영국에서 ‘페미니스트 지리학’ 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지역문제를 잘 볼 수 있겠다고 느껴 영국으로가게 되었다.

 

바바라는 영국 서섹스 대학 박사과정 시절의 지도교수이시다. 그 분에게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현재에 대해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대전여민회에 같이 가게 되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우리나라는 지역여성운동과 수도권 여성운동의 차이가 극심하다.

 

예컨대, 한국 여성학자들의 약 95% 정도가 수도권에 몰려있고, 나머지 5%가 지방에 있는 형태이다. 지역 내에 여성학 전문가들이 거의 부재할 뿐만 아니라, 정부나 기업, 사회기관 등에서의  물적 지원 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런 부분들이 참 아쉽다. 지방에도 여성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여성학 전문인력과 이들을 길러내는 대학과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 이전에 한겨레 등에 기고하는 글들을 보면 솔직담백하고 간결하다고 할까. 속 시원하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으신 것 같다. 글에서 전해지는 간결하고 명쾌함이 허성우 교수를 지금 실천여성학의 이끌어가는 자리에 있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글에서 전해지는 느낌들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이런 간결한 문체는 지난 5년 반 가량의 영국 유학생활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인지 번역체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또 귀국 후 주로 학술논문을 많이 쓰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간결하고 명확한 단어를 주로 사용하면서 글을 써서 그런가 보다.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솔직한 성격이기도 하다.

 

유학 가기 전 대전여민회 시절에는 문체가 더 풍부했고 낭만적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지금의 문체를  보다 풍부하고 유려한 문체로 바꾸고 싶다.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는 것 같지만 단지 작년에 명확한 어투나 이런 것 때문에 ‘빡빡하고 무서운 교수’라는 인상을 갖는 학생들이 소수 있었다. 이건 내가 공부와 과제 등에서 대해서는 별로 잘 안봐줘서 그런거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항상’ ‘빡빡한’ 사람은 아니다. 
 
  - 올해 3월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개편된 부분에 대해 기고한 글을 읽어 봤다. 여성부 개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우리나라가 여성에 대한 처우가 이전에 비해 어떻게 변해왔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듣고 싶다.

 

여성부가 올 3월 여성가족부로 개편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아직 많은 업무들은 보건복지부에 남아 있는 상태다. 기존의 여성부에서 ‘가족’과 관련된 부분들만을 강조한다고 할까. 현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여성관련 정책이 후퇴한 느낌이다.


 

현 정부는 여성에게 ‘가족’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사회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가족 내 여성 역할을 강조하는 데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패러다임으로 변환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환경, 노동 등  여러 사회 분야들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성문제에 대해서 여성가족부가 다른 행정부서들과 긴밀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되 다른 행정부서들의 여성정책 수행을 점검, 제안, 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현재 대학원에서 실천여성학과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허성우 교수가 생각하는 ‘미래여성 NGO리더십’ 이란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지?

현재 성공회대 ‘실천여성학’은 유한킴벌리, 한국여성재단,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미래여성 NGO리더십 장학금’을 매년 10명씩 후원,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현재 12명이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다. 모두 현장에서 활동하는 운동가이니 그들의 일정에 방해되지 않도록 수업을 토요일에 몰아서 한다. 지방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오시는 분들은 기진맥진해서 돌아가기 마련이다.

 

지방에도 이러한 강의를 하는 곳이 하루빨리 생기길 바란다. 그러한 고생의 성과라고 할까,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 중 3명(1기 나정숙 안산시 민주당 시의원,  2기 강진희  울산시 북구 기초의원, 3기 한명희 서울시 민주당 시의원) 이 지방정치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들이 여성운동가라는 위치에서 또 한걸음 더 나간 느낌이다. 


 실천여성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미래여성 NGO리더십이란 크게 보는, 즉 거시적인 남녀평등의 대안과 목표를 가지면서 이것과 미시적인 정치 변화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운동이 단지 개인 남성들과의 투쟁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 면면히 녹아있고 재생산되는 단단한 성차별 구조와 문화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이 안에 살아가는 개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여성운동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성차별적인 전통적인 틀을 깨는 변화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

                            

인터뷰 내내 생기 있는 눈빛으로 응해준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허성우 교수. 최근 연구실을 옮겨서 정리가 덜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허성우 교수는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성차별, 여성운동 내부의 극심한 지역차이, 그리고 여성정책 등 관심 분야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리더십 있는 여성운동가이자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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