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매기

김점용

 

 

일부러 잊은 건 아닌데

작정하고 잊은 것처럼

 

이번 추석엔 다음 기일엔 가야지 간다고 말하면서도

가서 다 털어놔야지 다짐하면서도 

 

서울역에서도 울고 인천공항에서도 운다는데

십팔번 그 울음소리 듣지 못하네 들리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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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마음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살고 있는 나는 서울 갈매긴가 대전 갈매긴가 부산 갈매긴가?

철학과 명상의 시인 김점용 시집(메롱메롱 은주)을 다시 감상 하는데

짦은 시 하나가 딱 눈을 찔렀다. 굳이 명절분위기 탓만은 아니다.

나 자신, 유난히 형제들의 말에서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았고

어찌보면 사실 이웃보다 형제들이 더 멀고 소홀한 면이 많기

때문이며 그것이 당연한 듯 무디게 살고 있다는 점에 찔렸기

때문이다. 모임 때마다 어느 시인의 취중 십팔번이기도 했던

부산 갈매기!

그만큼 뿌리를 뽑혀버린 것 같은 공허한 내면을 소리 지르는

듯해서 안쓰러웠던 그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위 시는 짧지만 내포하는 내용은 길고 깊어서 오래 생각에

머물게 한다. 정작 소중한 이들에겐 마음 한 조각 보여주지

못하고 사는 우리네 마음을 콕콕 찌르는 목쉰 갈매기!

도시 변방을 떠돌며 허한 가슴을 헤집는 갈매기!

부산 갈매기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머뭇머뭇 미루다가 담은 점점 높아져 가는데, 바쁜 일만 끝내고,

아니 좀 더 넉넉해지면... 어떤 계기라도 생기면 (사실 명절보다

더 좋은 계기가 없는데도 말이다.)‘저 담 허물고 해맑게 손 내밀고

눈물 한 줄기 나눠야지’ 하다가 지난 설날도 지나가버렸다.

올 추석도 충분히 가슴 아릴 각오만 하고 다가갈 용기는 핑계로

지워버리려 하는 사람들 속에 나도 있었다.

슈퍼문이 떠오른단다. 전화라도 걸어야겠다.

한번쯤 내 마음도 슈퍼문이 되어보리라!

어여쁜 갈매기 한 마리 도시의 밤을 밝힌다.

(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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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용 시인/

경남 통영 출생

<문학과 사회>등단(1997)

시집 『메롱메롱 은주』 『오늘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문학과 지성사)

<시산맥>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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