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중앙뉴스=신주영기자]중국발 원자재 가격 하락과 세계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세계 곳곳에 마이너스 물가가 속출하는 등 디플레이션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 중국 등이 양적완화 정책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 조사를 시작한 1965년 이래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디플레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영국 마이너스 물가…미국·일본 0%대

 

21일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주요 국가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작년 동기대비 마이너스이거나 0%에 머물렀다.

 

유로존은 작년 동기대비 -0.1%로, 지난 3월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0%로 제자리걸음을 했고 그리스(-1.7%), 스페인(-0.9%), 핀란드(-0.6%), 슬로베니아(-0.6%), 슬로바키아(-0.5%)는 마이너스였다.

 

네덜란드(0.6%)와 포르투갈(0.9%)도 1%를 넘지 못했다. 영국은 9월 물가상승률이 작년 동기대비 -0.1%로, 1960년 이래 두번째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영란은행은 내년 초까지 물가 상승률이 1%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작년 동기대비로는 8월 0.2%에서 9월 0%로 떨어졌다. 전달 대비로는 -0.2%를 나타내며 2개월 연속 하락했다.

 

CNBC는 "물가 상승률이 높은 서부 지역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이미 8월에 작년 동기대비 -0.19%였다"고 전했다.

 

일본은 8월 물가 상승률이 작년 동기 대비 0.2%였다. 일본 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2.3%에서 4월 0.6%로 내려온 이래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작년 동기에 비해 1.6% 상승했지만 전달(2.0%)에 비해 낮아졌고 시장 전망치(1.8%)도 밑돌았다.

 

이 밖에 폴란드가 -0.8%로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으며 헝가리(-0.4%)와 태국(-1.1%)도 마이너스였다. 스리랑카는 -0.3%로 199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생산자 물가가 9월까지 4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세계에 디플레 압력을 수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유가 급락 등으로 인해 경제난에 빠진 러시아는 9월 물가 상승률이 작년 동기대비 15.7%로 두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갔고 부채 과다로 위기에 처한 터키는 8.0%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물가 상승률을 159%로 전망한 베네수엘라는 아예 수치를 내지 않고 있다.

 

원자재 가격 약세에 타격을 입어 통화가치가 급락한 칠레(4.6%), 콜롬비아(5.3%), 페루(3.9%), 인도네시아(6.8%), 말레이시아(3.1%) 등 자원 수출국들도 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 올해 소비자 물가 50년만에 최저 전망

 

한국은 9월 물가 상승률이 작년 동기대비 0.6%로 10개월째 0%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물가 상승세 둔화는 중국발 세계 경제 성장 둔화로 인해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경제가 활기를 잃고 침체에 빠지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을 0.9%에서 0.7%로 낮췄는데 이는 사상 최저치다.

 

이미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유가하락 등으로 인해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5%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통계청이 전국단위 소비자 물가를 조사한 1965년 이래 물가 상승률이 가장 낮았던 해는 외환위기가 닥친 1999년 0.8%였다.

 

블룸버그가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0.8%다. LG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의 전망치 역시 0.8%다.

 

최근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11년 4.0%를 기록한 이래 2012년 2.2%, 2013년 1.3%, 2014년 1.3%로 하락 추세를 이어왔다.

 

이는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치 2.5∼3.5%에 크게 미달하는 수준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등 세계의 성장 방식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원자재 가격이 올해처럼 급락하지는 않더라도 기조적으로 약세를 이어가고 사람들이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호하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에도 물가 상승률이 1%대 초반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내년 물가 상승률이 1.7%로 올라갈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는 종전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춘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0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앞두고 페루 리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디플레이션을 우려를 낮추기 위해 통화 완화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가 있는데 디플레 완화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경제 성장"이라고 말했다.

 

◇ ECB 등 양적완화 확대 기대 커져

 

오는 22일 몰타에서 열리는 ECB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는 등 양적완화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9월 유로존 물가 상승률이 지난 3월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ECB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애널리스트 하워드 아처는 "유로존의 9월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부양책 강화의 압박을 키운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의 일반적인 전망은 ECB가 연말께 양적완화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20일 전했다. 중국의 추가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9%로, 정부의 목표치(7.0%)에 미달하면서 이달 말에 열리는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 5중전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민은행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감세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주식시장제도 간소화 조치 등도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행도 이달 말 회의에서 양적완화 확대 등을 포함한 부양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이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이달은 물론이고 12월에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연준 일각에서는 연준에 돈을 맡기는 은행에 비용을 물리는 마이너스 금리도 언급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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