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이 땅위에 생겨난 지 20년이 된다. 처음에는 불법 교원단체로 규정되어 지도부가 사법 처리되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교원이 노동자냐 아니냐 하는 해묵은 논쟁도 벌어졌다. 많은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노동자’로 간주하는 것이 주저되었던 게 사실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등 육체적인 노동만을 노동자로 생각하는 전통적 노동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노동계의 추세는 육체노동자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동자들도 모두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전국교원노동조합은 투쟁으로 합법성을 쟁취했고 조직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전국의 교육계를 들끓게 할 만큼 조직은 확장일로를 걸었다. 처음에는 불과 수천 명이던 조직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니 어느덧 10만에 육박하는 대규모 조직으로 변모했다. 교사라는 단일직업 체제로 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는 교육자로서 높은 수준의 봉급자인 그들은 조합비만으로도 수백억원을 걷는다. 이를 토대로 민주노총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더 많은 자금활용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영향력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었으며 그들의 강령에 따른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진보좌파의 온상 구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한 때 9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던 전교조 숫자는 현재 1~2만명 감소했다고 하지만 영향력에는 아무 차질이 없다. 이들의 명단은 철저히 어둠 속에 갇혀 있다. 기본적으로 교육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이고 그 강령에 찬성한 사람들만 가입한 것이라면 명단을 밝히는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명단을 공개한 국회 조전혁은 하루에 3천만원을 내라는 판사의 명령을 받고 4일간 공개한 몫으로 1억2천만원을 물어내야 하는 곤경에 처했다. 이처럼 서슬퍼런 전교조에게 지난번 시행된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는 물 만난 고기 격이었다. 더구나 정당공천을 배제한 교육선거는 다른 지방선거와 뒤섞여 한 날 한 시에 시행되는 통에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이상한 선거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감의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 그리고 교육의원의 막대한 책임에 비해서 훨씬 뒤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구청장, 군수, 시장, 기초의원선거가 오히려 관심의 초점이 되는 넌센스 속에 소속도 없고, 기호도 없는 교육선거는 삼베 뒤에 걸레 따라가듯 영문도 모른 체 시행되었다. 매스컴에서도 간혹 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선거의 맹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법이 정한 절차였기에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더 이상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폐해가 곧 국민 전체에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이미 엎어진 물이 된 셈이다. 이 선거에서 전교조는 일약 약진했다. 지방선거는 전체적으로 야당인 민주당의 승리로 결론 났다. 역대 지방선거는 언제나 야당의 승리라는 등식이 고정화되었지만 세종시와 4대강을 둘러싼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던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물러나는 정치판도의 변형을 초래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전교조였다.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여섯 곳에서 친전교조 교육감이 탄생했으며 교육의원 역시 다수 포진되어 그 지평을 한껏 넓혔다. 특히 6.2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두 달도 못되어 7.28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5:3의 참패를 면치 못했다. 이번에는 민주당 지도부가 사퇴를 표명하는 등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전교조만은 뒷짐을 진 체 미동도 하지 않는다. 화창하게 맑게 갠 바다처럼 출렁이는 파도조차 조용하기만 하다. 게다가 교육감의 권한을 최대한 살려 그들이 내세운 자율고나 외고 등 특수고에 대한 지정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전북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는 4년 동안 자율고 전환을 위해 온갖 준비를 갖췄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방편으로 학생의 선택권을 넓히고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한 두 학교는 해마다 2~3억원의 재단전입금까지 확보해 놨다. 전임 교육감이 지정한 자율고를 신임이 취소한다는 것은 오직 전교조의 정책에 충실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입만 열면 교육 백년대계를 부르짖던 교육자의 행태란 말인가.

4년 동안 철저한 준비를 갖췄던 두 학교의 자율고 취소는 학사 프로그램 전부를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심대한 피해를 안기는 일이다. 교육은 노동자를 자처하는 교사들의 조직에 불과한 전교조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교육감은 돌출적인 결정을 스스로 취소하는 것이 옳다. 전교조 역시 대승적 결단으로 이미 결정된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자제하는 슬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전교조의 위력은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을 내걸어 국민적인 지지와 성원을 먼저 획득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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