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섭 기자의 말말말] '신기루 사회'
[윤장섭 기자의 말말말] '신기루 사회'
  • 윤장섭 기자
  • 승인 2015.10.21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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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섭기자의 말말말] '신기루 사회'

대포통장 막는다고 멀쩡한 고객 '각설이' 취급 문전박대

 

한 서민이 있다. 서민 P씨는 사업소득자다. 원천세 3.3%를 납부하는 계약직이거나, 일용직일 것이다. 그리고 한 은행이 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국내 굴지의 은행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은행이다.

 

P씨는 최근 지인으로부터 '통장쪼개기'라는 재테크 스킬과 함께 차후 목돈 대출을 위한 '신용등급' 강의를 전수받고, 센스있는 신용사회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P씨는 입출금통장을 만들지 못하고 대신 적금통장과 신용카드 신청서만 만들어왔다.

어떻게 된일 일까?

 

"이제는 법이 바뀌어서 용돈관리, 저축목적으로는 통장을 만드실 수 없습니다. 고객님"!

은행직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에는 신분증만 있으면 됐던 입출금통장이 '피싱사기''대포통장' 등의 이유로 막아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 9가지 항목을 친절히 설명해줬다.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급여명세표 등을 떼어줄 수 있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급여계좌', 법인 '사업자의 계좌', 구성원 명부, 회칙 등의 입증이 가능한 서류를 떼어주는 '모임계좌'.

 

그리고 공과금 '자동이체 계좌', 아파트 '관리비 계좌',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 사본, 근로계약서, 급여명세표 등을 떼어주는 '아르바이트 계좌', 사업자의 '사업자금 계좌', 연구목적의 '연구비계좌', 개설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빙서류가 필요한 '그 외의 경우'가 그것이다.

 

사실상 별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주부, 학생, 하루에 한번씩 계약서를 쓰는 일용직 근로자는 안받겠다는 '각설이' 취급의 문전박대나 다름없다.

 

서민들이 통장을 여러개 개설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용돈, 비자금 등의 '쌈짓돈'이나, 재테크 고수들의 '통장 쪼개기' 비법을 실천하려 하거나, 어린 자녀에게 저축습관을 가르치려는 '교육목적' 등의 이유로는 개설이 이제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P씨는 집에서도 멀고, 이미 다른 은행들을 사용하고 있고 '언제 또 오겠냐'며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타진했다.

 

제일 만만한 공과금 자동이체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한달이내 타행 입출금 통장을 개설한 경우에는 당행에서 개설이 불가능 합니다. 고객님"

바로 전날 타행에서 만든 입출금통장이 원인이었다.

 

P씨는 상기의 '피싱'이나 '대포통장'의 이유로 만들어진 제한인 '입출금 계좌'를 개설한 경우, 한달이내 타행의 입출금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몰랐던 것이다.

 

타행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통지 받은 적이 없었다. 그냥 '요기, 죠기'에 동의 체크하고 싸인만 하면 만들어줬던 것이다.

 

P씨는 다 될것처럼 하고선, 한시간 넘게 기다려서 듣게 된 내용이 '그냥 돌아가시오'라니, 좀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애초에 입구에 큼지막하게 '전업 주부, 학생, 일용직 근로자 분들은 아래와 같은 용도가 아니면 통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를 써뒀으면 헛걸음 하는 일도 없었을 일이었다.

 

그래도 P씨는 정말 방법이 없냐고 사정하니, 방법을 알려준다. 실적포인트를 몇백점이나 쌓아야 한단다.

 

"그럼 대체 그 실적은 어떻게 쌓는 것이오" 물어보니, 적금은 들 수 있단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만들어줄 수 있단다.

 

실적부터 쌓아야 한다는 말에 일단 적금부터 만든 P씨.

 

또한 당행계좌가 없는데도 신용카드를 만들어준단 말에 "그럼 한번 만들어주시오" 하고 '요기, 죠기'싸인하란 서류를 넘겨주자. 승인절차에 들어간단다.

 

타행에서 신용카드를 만들러갔다, 망신만 당한 경험이 있는 P씨는 실소했다. '당행계좌가 없는 당행신용카드라니' 이렇게 신용카드 만들기가 쉬운 줄 알았으면 어제 타행에서 평잔을 만들고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애초에 계획했던 '통장쪼개기'의 적금용 계좌를 개설하고 돌아온 P씨는 뒤통수를 맞았다.

 

통장을 만들려면 3년동안을 돈만 내라는 은행 이다. 이 은행의 '실적'이란 10만원당 2점을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P씨가 만들어온 적금은 1분기에 100만원씩, 1년에 400만원을 붙는 적금이다.

 

1분기당 100만원씩 부었을 때 30개월지점에서 1000만원이 모이고, 1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6개월간 유지했을 때 발급이 가능한 내부 규정에 의해 입출금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후 P씨는 혼자서 여기저기를 통해 알아보면서 한달 후에 공과금 통장을 개설할 수 있지만, 그 통장은 '출금이 제한'된다는 사실에 허탈하게 웃는다.

 

이는 비단 P씨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금융목적을 증명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서민' 모두가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요청했을 때 증빙을 바로 발급해주면 좋겠지만, 영세한 업장에서 그런 요구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광고와는 180도 다른 '은행의 두얼굴'

 

신용사회, 스마트금융사회다. '스마트 소비', '금융지능'을 강요받는 사회다.

티비만 틀면, 신문만 펼치면, 인터넷만 들어가면, 어디가 어디랑 합병을 하고, 자산이 200조가 넘고, 누굴 섬기고, 누구와 함께하는 등의 광고선전을 볼 수 있다.

 

마치 은행에 가면 친절하고, 같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P씨도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한푼이라도 아껴보고자, 똑똑하게 써보고자 하는 '진짜 서민'들은 입장이 불가능한 '신기루 사회'였다. S은행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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