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망치고 몸까지 망가지는 일이 한 두 가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주색잡기(酒色雜技)를 으뜸으로 쳐왔다. 술이 지나쳐 중독지경에 이르고, 색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잡기는 도박인데 화투 마작 등 전문적인 도박기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골프나 바둑으로도 도박은 일상화되다시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은 어떤 문제점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사전에 맞추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만 원래 화투에서 나온 말이다.

 

도박은 아마 인류가 생성되었을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부족들과의 마찰을 이겨내며 사회 구성원들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하는 지도자는 온갖 술수에 능하기도 해야겠지만 모험적인 일도 마다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험은 판돈을 걸고 배팅하는 도박과 유사하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도 일종의 도박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도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국가적인 대사(大事)와 연관된 것이라면 개인의 호불호는 문제가 안 된다. 큰 틀 속에서 움직이고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개인의 잡기행위다.

 

우리나라에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인정하는 도박이 있다. 카지노다. 대부분이 외국인 전용으로 운영되지만 강원랜드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워커힐처럼 외국인 전용카지노도 외국인과 동행하면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눈감고 아웅하는 일도 흔하다. 경마(競馬)나 경륜(競輪) 같은 스포츠를 내세운 도박경기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마권을 사는데 일정액 이상은 팔지 못하게 정해져 있지만 그까짓 규정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경마 팬들은 엄청난 돈을 마구잡이로 뿌린다. 재수가 좋으면 큰 배당을 받겠지만 대부분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게 경마나 경륜이 남기는 후유증이다. 그럴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기에 빠진다.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고도의 경제행위에 속하지만 이것 역시 도박처럼 투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주식으로 부자가 되기도 하지만 망한 사람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돈에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앞뒤 돌아보지 않고 배팅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당한다. 이런 일들은 개미라고 부르는 소액투자자들에게는 치명적인 패가망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력(餘力)이 없다보니 일가친척에게서 빌리고 직장공금을 빼 쓰다가 쇠고랑을 차기도 한다.

 

얼마 전 유명 농구감독이 승부조작에 걸려들어 구속되었는데 그의 연봉이 7억이라고 보도되었다. 일반서민들은 평생 벌어도 만져보지 못하는 큰돈을 주무르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 그런 짓을 했을까 혀를 차는 이들이 많았다. 항간에는 조폭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얘기도 나왔다. 축구선수들도 승부조작에 끼어들었다가 선수생명을 잃은 사례가 많다.

 

승부조작은 외국에서 전문적인 스포츠 도박사들이 기획하는 것으로만 들어오던 우리들은 드디어 한국에도 이러한 부정행위가 틈입(闖入)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운동선수 중에는 거액을 받는 스타들도 있지만 푼돈밖에 거머쥘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들이 뒷전에서 유혹하는 도박사들에게 넘어가 집단적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한다면 스포츠는 엉망이 되고 사회는 어지럼증에 빠지고 만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야구다.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가 최고의 경기로 꼽혔으나 지금은 야구에 비하면 시들해졌다.

 

엄청난 재정을 확보하고 있는 축구협회가 국민적 총화를 이룰 수 있는 운영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주도권을 쥔 몇몇 사람들의 자기세력 구축에만 골몰하다보니 새로운 혁신을 이루지 못한데서 오는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축구중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선수발굴과 협회구성에 개혁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24명으로 회장을 선출하는 제도적 퇴행성을 고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여론이 잠잠해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감감 무소식이다.

 

축구의 부진을 틈타 야구는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다.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유료입장객 수는 프로야구의 인기를 반영한다. 이제는 고척돔 경기장까지 완공되어 전천후 경기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로 터져 나온 게 삼성 팀 투수 세 사람의 원정도박 파문이다. 삼성은 시즌 내내 1위를 고수했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 최후의 승자를 결정하는 한국시리즈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야구팬들은 삼성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두산에게 일패도지(一敗塗地)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자만이다. 해마다 한국시리즈를 제패해 왔다는 자만심이 선수들을 긴장에서 풀어줬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면서 마카오로 원정도박에 나선 투수 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선수관리 시스템도 없었던 모양이다. 무조건 이긴다고 자만하고 있는 팀의 집단적 해이(解弛)다.

 

투수 세 사람이 빠진 삼성은 허우적대다가 스스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12명의 부자 도박꾼들이 마카오 원정도박에서 500억을 잃고 귀국했다가 모조리 입건되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마카오 베네치안 도박장은 축구장 12개 크기다.

 

모나코나 라스베가스 같은 도박도시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 장난삼아 입장한다. 그러나 연예인, 스포츠맨 등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들이 거액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은 패가망신의 근본이다. 이들이 인기무대에 다시는 설 수 없도록 하는 게 예방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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