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신주영기자]최근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상대로 집단대출 실태점검에 나선 가운데 은행들은 이미 한두 달 전부터 집단대출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자율적으로 대출심사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과열양상을 보이는 주택 분양시장의 위험 징후를 포착하고 자체적으로 집단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시공사 보증으로 계약자에 대한 개별 소득심사 없이 중도금 또는 잔금을 분양가의 60∼70% 수준까지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올 들어서는 분양시장 호조로 중도금 집단 대출만 9조원 넘게 증가하는 등 집단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고 있다.

 

한 시중은행 담당 부행장은 "금감원 조사 이전인 지난 9월부터 집단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신규분양 아파트 공급이 인구구조에 기반를 둔 주택수요에 비해 많다는 학계 의견과 현장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를 고려해 분양시장에 위험 요인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다른 관계자는 "분양시장에 실수요도 많지만 투기 목적의 수요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시장에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집단대출 점검에 나서면서 은행들이 대출 줄이기를 시작했다는 일각의 시각과는 은행들이 먼저 위기 징후를 감지하고 관리에 들어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집단대출이 은행들의 안정적인 수익원 역할을 해 그동안 은행들이 치열한 영업경쟁을 벌여왔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모양새다.

 

은행권에서는 사업성이 좋지 않은 일부 비수도권 분양물을 중심으로 대출 부실화가 나타날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 후불제가 일반화된 것도 위험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당장 이자부담이 없다 보니 원리금 상환 능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분양권 프리미엄만 노리고 무리하게 분양신청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일부 택지개발지구의 경우 분양가 대비 집값이 크게 하락해 계약자들이 웃돈을 얹어주고서라도 분양권을 손절매하려는 사태가 속출하기도 했다.

 

2007년 수도권 외곽 지역의 분양 아파트에서 이런 현상이 주로 나타났고, 입주자 및 건설사 간 분쟁과 연체율 증가가 뒤따랐다.

 

금감원 관계자는 "집단대출이 최근 크게 늘어나 점검에 나섰더니 시중은행들이 이미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 상태였다"며 "은행 측에서 '우리도 대출하기가 겁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밀어내기 분양이 잇따르면 뒤이어 부작용을 나타날 게 뻔하다"며 "관계 당국에서 분양물량 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발 경기 둔화로 요약되는 '주요 2개국(G2) 리스크'가 부상한 상황에서 향후 2∼3년 사이 일부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입주 포기자들이 또다시 속출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분양 공급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장 승인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데다 분양시장이 제각각이고 이해관계가 다양해 당국으로서도 공급물량을 일률적으로 조절하는 게 쉽

 

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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