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시위는 파리테러보다 무섭다
과격시위는 파리테러보다 무섭다
  • 전대열 大記者
  • 승인 2015.11.2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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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의 IS 테러는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섯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테러로 127명이 죽고 그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중상을 입었다. 프랑스 올랑드대통령은 축구경기장에서 관전을 하다가 긴급보고를 받고 살그머니 빠져 나갔다.

 

경기는 중단되고 경기장 운영자들은 모든 관전자를 그라운드에 내려오게 하여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혼란을 미연에 방지했다. 자칫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부터 전했을 때의 혼란을 사전에 봉쇄한 치밀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축구장에 입장하는 관중들은 게이트를 통과할 때 철저한 수색을 받았다. 테러예방책이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시위에 나가는 젊은이들이 화염병을 소지하고 있거나 쇠파이프를 몰래 가지고 있다가 지하철 입구 등에서 검문검색에 적발된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검문검색이 인권유린이라는 항의에 부딪쳐 요즘은 아예 예방경찰의 모습은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인권옹호의 상징국이나 다름없는 프랑스에서 이날의 테러를 예견하지 못했으면서도 축구장 앞에서 철저히 예방활동을 한 것이 사후에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혹시 시도했을지도 모르는 테러범들이 아예 입장조차 포기했다면 검문검색의 중요성은 달리 말할 필요조차 없다.

 

모든 위해요소는 사전에 제거하거나 방지해야만 효과의 극대화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무함마드를 풍자한 파리의 만화잡지 샤를리에보드의 테러가 있은 지 1년도 못되어 또다시 대규모 테러가 발생한 것은 시리아 난민문제와 얽히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번 파리테러의 특징은 테러의 대상이 소프트 타킷이라는 점이다. 과거에 군부대나 경찰서 아니면 시장판의 어수선한 장소를 선택했던 것과 달리 극장 레스토랑과 같은 평화롭고 한가한 관중들을 겨눴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장소를 택하여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른 테러범들에 대해서 오바마를 비롯한 세계정상들은 다에시(Daesh)라는 비칭을 사용하고 있다.

 

IS는 테러범들의 집단이 스스로 붙인 이름인데 이슬람국가라는 나라의 명칭으로 국제사회에 정식으로 등록하려고 나선 이름이다. 세계 각국정상들은 이를 거부하고 테러집단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다에시를 사용하기로 한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테러집단을 하나의 나라로 대접할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앞으로는 IS대신 다에시로 통일하여 부르는 게 옳을 듯하다.

 

이번 파리테러를 계기로 한국의 고등학생으로 다에시 테러집단에 자원 합류한 ‘김군’의 행방에 대한 얘기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안타까운 것은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미 사망한 것 아니냐 하는 견해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점이다.

 

이는 김군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철부지 소년의 행방은 어느 누구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흥밋거리로 삼아 이러쿵저러쿵 말해선 안 된다. 김군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 하는 것이 당국자나 언론인 누구에게나 산사람의 예의다.

 

오늘 얘기하려고 했던 문제가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이제라도 본론에 들어가 보자. 파리테러와 함께 거의 동시적으로 서울에서는 어마어마한 시위가 벌어져 수많은 경찰이 다치고 시위자 중에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실신한 사람까지 발생했다. 경찰에서는 과격시위 때문에 만부득이 물대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고 시위자측은 과잉진압으로 피해가 컸다고 맞서고 있다.

 

이번 시위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연대 등 진보진영이라고 부르는 40여개의 단체가 합동으로 참가했다. 이름이 ‘국민총궐기’다. 그들이 내세운 이슈에는 역사교과서도 있고, 노동개혁도 있으며, 4대강도 있고 심지어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석방에 관한 구호까지 터져 나왔다고 하니 이른바 정치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한꺼번에 묻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우리는 현 정치상황을 살펴보면서 과연 현재의 시점이 그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된다. 국민이 총궐기하려면 정권의 부도덕성이 극에 달했을 때 명분을 얻는다. 부정선거로 국민의 권리를 깔아뭉갰던 이승만정권은 학생들의 총궐기로 쫓겨났다. 4.19혁명이다.

 

전두환정권이 호헌을 내걸고 직선제개헌을 거부할 때 전 국민은 총궐기하여 직선제개헌을 쟁취했다. 6.10항쟁에 따른 6.29항복 선언이다. 이처럼 뚜렷한 이슈가 국민적 공감대를 이룬다면 아무리 악독한 정권이라고 할지라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했으며 커다란 긍지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현 박근혜정부는 어떤가.

 

인사문제에서 오판을 거듭하여 치소를 면치 못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이 부정이나 독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국민도 궐기를 통하여 정권을 흔들겠다는 과격시위를 지지하지 않는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10항쟁 같은 국민의 통합의사가 있을 때만이 운동의 정당성은 인정되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의 과격시위는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12월5일 제2차 국민총궐기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진정 애국심으로 시위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발상을 전환하여 깃발도, 마이크도, 쇠파이프도, 사다리도 없는 침묵시위를 해보라. 국민의 눈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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