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이란 자기의 원래 얼굴을 가려 남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위장하는 행위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얼굴에 시커먼 먹칠을 하고 군복도 알록달록하게 물들여 입고 탱크지붕에도 온갖 생나무를 얹어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위장술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탐정소설을 읽어보면 양복이나 안경 또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자신을 전혀 딴 사람으로 바꾸는 기술(奇術)을 발휘하는 장면이 수없이 등장한다. 요즘 어떤 TV방송에서는 복면가왕(覆面歌王)이라는 프로를 운영하는데 복면을 쓰고 나온 가수가 누구인지 시청자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매우 인기 있는 프로로 자리 잡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인들이 위장을 하고, 탐정의 신분을 밝히지 않기 위해서 패션을 바꾸고, 오락프로로서의 재미를 위해서 가수들이 복면을 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시비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또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는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도록 강요한다. 수천 년 내려온 이슬람의 계율이라고 하지만 이를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로 치부하여 저항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슬람국가를 자칭하여 IS로 부르는 테러집단은 시리아의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고 막강한 석유생산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무지막지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탈레반 알카에다 등 종래의 테러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이 공포집단은 잔인한 테러를 자행함으로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들의 특징이 복면이다. 외국의 관광객이나 외교관 등을 납치하여 그 나라와 석방협상을 벌리다가 요구한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참수(斬首)로 최고의 잔인성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 선교사 한 사람도 이들에게 희생되었고 일본의 언론인 등 나라마다 피해를 보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다. 이들을 가리켜 외국의 정상들은 다에시라는 비칭을 사용하지만 일반은 IS로 호칭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들은 참수를 자행하는 장면을 SNS를 통하여 가감 없이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참수를 자행하는 막나니는 제 얼굴을 꽁꽁 싸맸다.

 

눈만 빼꼼 보이는데 그 중의 한 놈이 영국에서 가담한 아무개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뒷 소식까지 전해졌다. IS가 복면을 한 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다. 지난번 미증유의 참사를 빚어냈던 파리테러에서는 자살폭탄을 터뜨릴 정도로 죽기로 작정하고 나왔기 때문에 얼굴이 공개되었지만 훈련 시에도 복면을 하고 있는 동영상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복면문제가 여야 간에 시끄럽다. 파리테러와 거의 동시에 터졌던 이른바 민중총궐기에서 이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과 농민단체원들이 처음부터 복면을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광화문을 돌파하여 청와대로 쳐들어가자고 할 것은 과거 광우병을 빙자하여 이명박정권의 초기집권을 흔들었던 전력(前歷)으로 미뤄볼 때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어서 경찰은 아예 경찰버스를 동원하여 예방선을 구축했다. 시위대 역시 그렇게 나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사전에 버스를 끌어낼 모든 준비를 갖췄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은 손자병법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찰은 시위대의 전략을 꿰뚫고 있었으며 시위대 역시 경찰의 대응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에 누가 더 힘이 세느냐에 승패는 갈린다. 경찰은 공권력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경찰의 기본적인 임무는 국민이 그들에게 준 권리다. 폭력을 방지하고 치안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본을 지켜내기 위해서 경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따라서 경찰의 힘은 국가와 국민이 합의하여 그들에게 내려준 권한이며 법에 근거한다. 그러나 시위대는 집회의 자유를 마음껏 구사할 수는 있을지언정 기물을 파손하거나 경찰을 폭행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며 범죄가 된다. 그들도 그러한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는 요인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공무집행방해, 폭행, 상해, 기물파손 등등 시위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은 수없이 많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가면을 썼다.

 

이른바 복면시위다. 모자를 깊숙하게 뒤집어 쓴 다음 긴 수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면 아무리 카메라를 바짝 갖다 대더라도 누군지 가려낼 방도가 없다. 은행이나 편의점에서 강도 노릇하는 자들도, 남의 신용카드로 돈을 빼내는 도둑도 모두 썬그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춘다. 길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찍고 있는 CCTV를 벗어나기 위해서 온갖 기교를 다 부리는 것이다.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는 얄팍한 수작이지만 대부분 붙잡힌다. 그러나 수만 명이 집단광기를 보이는 시위대원들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경찰의 채증(採證) 팀도 실력을 발휘할 방안이 없다. 얼마 전 법원에서 복면시위를 한 사람에게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마 현장에서 체포되었기에 꼼짝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판사는 복면을 하고 시위에 가담한 것은 불법을 저지르기 위해서 범죄를 준비한 것으로 계획적인 범죄행위로 판단한 듯하다. 이 판결에서 보듯이 복면시위는 애초부터 불법행위를 하겠다는 예비행위를 하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엄벌에 처하는 것이 옳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판결을 계기로 우리 시위문화가 오직 힘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4.19혁명과 같이 국민적 정당성을 획득할 때만이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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