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강·병든 강 되살리는 생명운동
 
 
산업화에 몸살을 앓아온 우리 강이다. 도로나 항만 같은 인프라에 밀리면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염물질들을 묵묵히 받아낸 우리 강이다. 4대강살리기는 오염된 강, 병든 강을 되살리고 우리 곁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생명운동이다. 홍수와 가뭄을 번갈아 불러오는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우리 강산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희망 살리기다.

후드득. 한바탕 소나기가 지난 때문인가. 경기 여주군 여주읍 상리 영월공원 내 현충탑 언덕 위의 시야가 탁 트인 나무 데크에서 습기 가득한 대기 너머 남한강 상류 쪽으로 눈을 돌리니 펼쳐지는 게 그저 아련한 푸른빛이다.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하늘인가. 푸른빛이 넓고도 길다.

언덕 바로 아래로는 짙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강 건너 초록 숲에 자리한 천년고찰 신륵사 앞을 지나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강 이편과 저편 나루터를 오가는 황포돛배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하다. 황포돛배를 따라 잠시 역류한 시간은 나루터 옆 강변 유원지에서 출발한 보트와 수상스키를 만나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

시선을 남한강 하류 쪽으로 돌리면 5백 미터 길이의 여주대교가 보인다. 여주대교에서 가까운 신륵사와 강변의 여유로운 풍경, 여주읍내의 명성황후 생가, 여주대교 아래쪽 능서면의 세종대왕릉과 효종릉까지, 고풍스럽고 평화로운 여주의 여름 풍경이다.

홍수 위험 막기 위해 여주지역에 보 3개 설치

하지만 여주의 여름이 항상 이렇게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이곳의 여름은 홍수 위협으로 점철돼왔다. 여주대교만 해도 2006년 7월 강물이 불어 홍수위험수위 9.5미터를 넘어 9.9미터까지 상승해 주민들이 놀라 대피하기도 했다. 그동안 여주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컸던 해로 꼽히는 것만도 1972, 1990, 1992, 1995, 2001, 2006년, 피해액으로는 2001년의 91억원이 최대다.

여주지역의 홍수 피해가 큰 것은 집중호우가 주된 원인이다. 여주읍 시가지를 배로 다닐 정도로 침수 피해가 심각했던 1972년의 경우 여주지역 연간 강수량은 1천3백54밀리미터로 예년 수준이었으나 8월에만 6백1.5밀리미터가 집중됐다. 1995년 8월 역시 7백22밀리미터, 2006년 8월 8백44밀리미터로 여름철에 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름철이면 홍수가 빈발하는 경기 여주군의 여주대교 바로 아래까지 남한강 물이 넘실대고 있다.

여주와 같이 나날이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기후변화 속에 홍수 위험이 빈발하고 있는 지역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4대강살리기 사업이다.

기후변화라는 인류의 위기에 대처하며 수해 예방과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복합공간 조성, 지역발전 등 다목적으로 추진되는 4대강살리기는 지난해부터 2012년까지 총사업비 22조2천억원을 들여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에 모두 16개의 보를 건설하고 강바닥을 준설하게 된다. 또 4대강을 따라 농업용 저수지, 강변 저류지, 생태하천, 자전거도로 등을 만들고 노후 제방을 보강하는 국토 살리기 사업이다. 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이 2011년 준공될 예정이다.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한강에 신설되는 강천보, 여주보, 이포보 등 3개의 보(洑)는 모두 여주지역에 들어선다. 이 지역의 홍수 위험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발길을 여주대교 위쪽 여주읍 단현리 한강살리기 사업 6공구로 옮기니 강천보의 우뚝 선 6개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건너편 강가에 빨간색 화살표시가 눈에 띈다. 보를 짓는 동안 강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고 있는 가물막이 밖으로 강물이 흐르는 곳이다.

“저 화살표는 지난해 수위 표시입니다. 보 건설과 더불어 준설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해 이곳 수위를 지난해보다 1.5미터가량 낮춰 홍수 우려를 크게 줄였습니다.”

6공구 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박성순 강천보건설단장의 설명이다. 올해 여주지역에서 홍수 소식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비가 적은 탓도 있지만 준설을 통해 강 수위를 낮춘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강천보의 6공구 공사는 8월 4일 현재 전체 공정의 29.4퍼센트가 완료됐다. 보는 42퍼센트, 준설은 51퍼센트 작업이 이뤄졌다.

박 단장은 “이제 보 주변을 둘러 강물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던 가물막이 철수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며 “가물막이 철수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통합관리센터와 소수력발전소 건설, 수문 제작 등 육상작업이 주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천보건설단이 강천섬 주변 생태하천(샛강) 준설작업 등을 위해 현장을 오가며 예정대로 한강살리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포보 3공구 현장에서는 7월 22일부터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보 기둥 위 크레인을 기습 점거한 환경단체 활동가 3명의 점거농성이 14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진보 성향의 사회단체나 정치인들까지 격려차 농성 현장을 찾아오고 있지만 정작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속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포보 농성 현장 인근에는 4대강살리기 사업에 찬성하는 지역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1500년 만에 찾아온 지역발전의 기회다. 외지인은 참견 마라”(천남리 주민 일동), “환경단체 및 야당은 한강살리기를 왜곡하지 마라”(보통리 주민 일동).

여주에서 나고 자란 여주 토박이인 교1리의 김재철(58) 이장은 “나도 환경운동을 했지만 지금 4대강살리기 사업에 대한 반대는 모든 개발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여주 지역민 입장에서 하나씩 합리적으로 풀어가지 않고 현실을 무시한 환경논리를 내세우는 것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 “1500년 만에 찾아온 지역발전 기회”

“1998년부터 이장을 맡아오며 저도 우리 동네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보고자 환경운동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남한강종합개발사업에도 반대했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우리 동네 바로 앞의 소양천 개발도 당연히 반대했죠. 그런데 소양천 정비가 끝나니까 확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여름철에 비만 오면 언제 강물이 넘칠지 몰라 잠을 못 이루고 한밤중에도 강가에 나가보곤 했는데 요즘은 비가 와도 발 뻗고 잡니다.”

낙동강에 쌓인 퇴적물이 강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자신의 땅이 소양천 사업지에 편입된다는 이유로 “이대로 내버려둬요” 하며 반대했던 다른 주민들도 요즘은 “개발하길 잘했다”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김 이장은 “내가 이장을 막 시작했을 때 인구 6만, 7만명이던 양평군이 요즘은 9만명을 바라보는데 그때 인구 10만명이던 여주는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10만명”이라며 “전에는 ‘여주, 이천’이렇게 꼽았는데, 이제는 이천에도 뒤져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일차적으로 4대강 지역 주민들의 숙원 해소를 위해 시행 중인 4대강살리기 사업을 둘러싼 일부의 ‘대안 없는 발목 잡기’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답답한 속내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16일에는 충남 부여군의 사단법인 부여군 개발위원회(회장 김용태) 소속 지역주민 11명이 한나라당, 민주당 등 여야 정치권과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등을 직접 찾아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역 현실을 제대로 알고서 반대하려면 하라”며 “4대강살리기 사업을 원안 그대로 신속히 추진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주민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를 방문해 금강살리기 사업을 원하고 있으니 원안대로 추진해달라고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부여군민 1만2천명(총 부여군민 7만4천여 명)의 4대강살리기 사업 찬성 서명을 이날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심명필 본부장에게 전달한 이들 주민은 탄원서에서 “금강에 접한 부여군은 홍수에 대비한 배수펌프장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39개가 있지만 금강 하굿둑을 막아 강물이 유통되지 않고 퇴적층이 쌓여 강의 하상이 높아짐으로써 역류현상이 일어나 배수펌프장 기능을 상실했다”며 “지역 현실을 모르는 일부 소수 사회단체가 생태계 파괴 등의 이유를 내세워 4대강살리기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금강의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강바닥 준설은 막힌 지역경제 동맥 뚫는 길”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의 노력으로 1급수로 다시 태어난 울산 태화강에서 열린 수영대회.
 
사실 과거 경부고속도로나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도 박수 속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준설과 보 설치를 포함한 4대강살리기 사업에 대해 ‘인위적 개발’에 반대하는 시선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고는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오염된 한강이 한강종합개발사업 이후 물고기가 살고 아이들이 헤엄치는 강으로 되살아나고 1990년대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울산 태화강이 수영대회가 열리는 1급수 생태하천으로 바뀐 사례 등은 인위적 개발이 자연을 되살릴 수 있음을 입증한다.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심명필 본부장은 “일부 국민이 반대한다지만 실제 4대강살리기 사업이 시행되는 지역의 지자체와 주민 대부분은 사업을 환영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 대구·경북지역의 일간지 <매일신문>이 1천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찬성 51.6퍼센트, 반대 36.4퍼센트로 나타났다. 이 중 ‘매우 반대’는 11.4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4대강살리기는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의 안전하고 수준 높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수혜자가 바로 지역주민입니다. 4대강살리기 사업이 방해받고 중단된다면 일차적 피해는 바로 지역과 그곳 주민이 보게 됩니다.”

여주에서 돌아본 4대강살리기는 바로 지역 살리기, 지역주민 살리기였다. 강의 준설은 막힌 지역경제의 동맥을 뚫고, 보(洑)는 지역주민을 살찌울 것이다. 정화된 4대강은 국민의 생명수, 국가의 녹색미래가 될 것이다. 4대강에는 강물만 흐르는 게 아니었다. 지역주민의 소망이, 대한민국의 희망이 흐르고 있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