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섭 기자의 말말말] 개천에서 용은 계속 나와야 한다

 

사법시험의 유래는 사법 및 검찰작용이 전문화되기 시작한 근대정부의 출범에서 시작됐다. 조선시대에도 잡과(雜科)의 하나로 율사(律士)에 대한 과거시험이 있기는 했으나 지금의 사법시험과는 성격이 달랐다.

 

한말(韓末)에 근대적 사법제도가 유입되면서 사법업무에 종사할 사람에 대한 자격시험이 잠시 실시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고등문관시험(高等文官試驗) 사법과 조선변호사시험이 실시되었다.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고등고시 사법과로 실시되어 오던 사법시험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식으로 사법시험(司法試驗)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됐다.  

 

초기 사법시험 선발인원은 지금처럼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1969년까지는 평균 6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합격할 수 있는 이른바 '절대점수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매년 합격자 수는 들쑥날쑥 해 1967년 합격자는 5명에 불과하기도 했다.

 

지금의 정원제가 도입된 것은 1970년이다. 법조인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으며 매년 60~80명 가량이던 사시 합격자는 1980년대 사법시험령이 전면 개정되면서 300명까지 늘었고 1996년 500명, 2000년 800명, 2001년에는 1000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합격자 1000명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에 따라 사법시험 폐지가 확정되었고 정부는 합격자를 매년 줄여나갔다. 2010년 합격자 수 800명에서 매년 50~100명씩 줄여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이 치러지는 2017년에는 50명만 선발할 계획이었다.  

 

사시의 폐지는 법조인들에게 뜨거운 감자였다. 최근 법무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에 따라 2017년도에 예정되었던 사법시험 폐지 결정을 2021년까지 4년간 유예하겠다고 밝혓다.이에 전국의 로스쿨 재학생들이 배수의진을 치고 법무부를 상대로 자퇴라는 카드를 들이대며 협박에 나섰다.

 

법무부가 최근 1000명의 국민들을 상대로 9월에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사시 2017년 폐지’에 12.6%가 동의한 반면 ‘사시 존치’에는 85.4%의 절대적인 숫자가 동의했다. 이는“국민의 80% 이상이 로스쿨 제도의 개선과 함께 사시 존치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변함없이 사시를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연간 최대 수천만 원의 비싼 학비를 지불해야 하는 로스쿨은 여유 있는 계층만 갈 수 있는 ‘돈스쿨’이지만 사시는 개천에서도 용을 만들어내는 서민들의 꿈이기 때문이다.

 

최근, 상류층이 만들어놓은 로스쿨 제도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시 출신 법조인들의 불만이 쌓여가던 차에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아들 로스쿨 압력’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가뜩이나 펄펄 끓던 사시 존치 여론에 기름을 들어 부었다.

 

그뿐이랴, SNS에서는 로스쿨을 거쳐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 로펌에 취직한 ‘고관대작’ 자녀의 명단까지 나돌기까지 했다. 여기서 로스쿨의 탄생 배경을 들여다 보자.

 

1995년 논의가 시작돼 2009년 도입된 로스쿨 제도는 사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사법시험은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시 낭인(浪人)' 등 국가적·개인적 낭비를 초래하고, 합격한 소수가 지나친 기득권을 누린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 많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도입하기로 한 것이 '로스쿨'이다. 그런데 도입 6년 만에 정부가 입장을 번복하면서 국가 정책의 신뢰성을 뭉개는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그렇다면 법무부는 왜 스스로 화약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들은 것일까?

 

로스쿨에 여러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무부의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주로 있는 집 자녀들이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 로펌으로 간다는 불만이 퍼지면서 '현대판 음서(蔭敍)제'란 지적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쿨이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로스쿨을 통해 많은 변호사들이 배출되면서 국민이 내야 하는 변호사 비용이 낮아진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공계 출신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로스쿨에 진학해 전문 분야의 변호사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법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시 대(對) 로스쿨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사시 폐지를 유예한 법무부 관계자들 전부가 사시 출신들이다.

 

사시 출신 법조계 인사 중엔 로스쿨 제도로 변호사 숫자가 크게 늘어나 수임 사건과 수임료가 줄어든 것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 자신들의 파이가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과연 법무부 결정에 이런 배경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안다. 현실적으로 로스쿨을 폐지하고 과거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로스쿨이 있는 대학과 법과대학이 있는 대학, 또 그 주변의 이해관계가 얼키고 설켜있기에 어떤 결론을 내려도 이번 법무부 결정에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공정하지 않다는 다수의 사시 지원자들의 ‘흙수저’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면 사시 폐지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의 종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결국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 공정한 사회가 돼야 로스쿨과 사시를 둘러싼 문제도 근본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프레임은 시민들에게는 그저 독점면허권을 둘러싼 그들만의 밥그릇싸움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司試 문제 하나 결정 못하는 정부가 답답할 따름이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