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는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인물을 살아낸다. 하지만 때로는 비슷한 이미지에 매몰되는 스타들이 많다. 이미지를 팔아먹고 살아가는 스타들의 숙명이다. 대중에 원하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한류스타인 이병헌은 어떨까. 최근 개봉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김지운 감독, 페퍼민트앤컴퍼니 제작)에서 이병헌은 약혼녀를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에게 빼앗기고 처절한 복수극을 감행하는 인물인 김수현을 연기했다.

    어둡고 답답한 성격에 연쇄살인마 못지 않은 잔인무도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과연 이병헌에게는 지켜야 할 이미지가 없을까. 이병헌 역시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으며 간혹 연기를 하다가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병헌에게 이번 작품은 배우로서는
    가장 만족할만한 필모그래피로 남을 전망이다. 자신의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도 과감히 응하는 그의 본모습이 궁금해졌다.

    ―개봉 전날에야 언론배급시사회를 열어야 할 만큼 두 번이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제 영화도 너무 잔인하다는
    반응이 많다. 본인은 어땠나.

    ▲만든 사람 입장이어서인지 정말 잔인한지 가늠하기 힘들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무척 재미있었다. 정말 제대로 된 상업영화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나나 민식이 형이나 감독님 모두 침체되고 우울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제한상영가를 두 번이나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보다는 갑자기 궁금해지더라. 찍을 때는 그 정도 판정을 받을 것이라 예상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김지운 감독님이 확실히 상업성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구나 하는 느낌이 확 왔다.

    ―어쨌든 본인이 연기한 수현도 최민식씨가 연기한 연쇄살인마 못지 않게 잔인하다. 논란이 많을 것 같다.

    ▲처음에는 수현이 복수를 하면서 연쇄살인마를 능가하는 악마성을 드러내는 인물로 변하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뻔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인물을 의도하지 않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로 연기했다. 어쨌든 복수에 나서지만 관객들은 수현의 복수극이 통쾌하지만은 않고 ‘저건 아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수현에게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관객들도 감정이입이 되겠지만 중간에서는 오히려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논란을 예상하고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센 역할이다. 배우로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연기를 할 때는 어렵지 않나.

    ▲어려서 연기와 나이 들어서 연기가 다른 것은 더욱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누구를 죽이는 경험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극대화시키거나 극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어려웠거나 벽에 부딪치는 경험을 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여러 인물들과 얽히고 설켜서 싸우고 장경철을 마침내 자신의 차에 태운 뒤에 차량 안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다가 울컥하는 장면이다. 피로한 얼굴에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하는 회한이 몰려오는 장면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한 연기다. 실제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장경철의 아킬레스를 칼로 자르는 것인데 연기하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연기하면서 피로가 극에 달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무섭고 처절한 영화를 촬영하다보니 악몽도 꿨을 것 같다. 실제로 이번에 꾼 게 있나.

    ▲사실 그런 꿈은 꾸지 않았다. 평소에 악몽이라고 하면 영화 촬영을 하고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제 두 신 남았습니다’ 하는 꿈이다. 그 때가 가장 몸서리치게 두렵다.(웃음)

    ―김지운 감독과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년간 쉬지 않고 어두운 역할만 해왔다. 앞으로 이미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원래
    계획이란 것을 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어떤 성격의 캐릭터를 해야지 하면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와도 잘 보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비슷한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다음에 맡게 될 배역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받는 오해나 편견이 있다면.

    ▲사실 고지식해서인지 사람들 앞에 서면 어른들 대하듯이 인사하고 항상 카메라 앞에서는 분칠을 해야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을 어떤 분들은 가식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내 본모습은 학창시절 반에서 항상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장난을 많이 쳐서 요주의를 받는 학생과 비슷하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는 절대 까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출처:스포츠원드 글 한준호, 사진 김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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