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김종호기자] 상생경영을 강조해온 연매출 10조원대의 패션 대기업 이랜드가 중소업체가 피땀흘려 만든 머플러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그동안 상생경영을 외쳐온 이랜드의 구호가 선언에 그쳤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A브랜드는 이랜드그룹의 신발 편집숍 ‘폴더’에서 판매 중이던 머플러 제품이 자사 제품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함을 발견하고 지난 11월 20일 이랜드 측에 판매 중지와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도용 논란에 휘말린 이랜드 폴더의 제품(왼쪽)과 A브랜드의 지난해 제품

 

패션 대기업 이랜드가 올 하반기부터 지난달까지 판매한 머플러는 A브랜드가 1년 전 출시한 머플러와 디자인이 거의 똑같다.

 

이랜드 ‘폴더’에서 팔린 유사제품의 가격은 2만 3천9백 원, 개발비 등을 반영해야 하는 원개발 중소업체의 판매가 6만 8천 원의 3분의 1 가격이다. 연 매출 2억 원대 업체에는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A브랜드의 관계자는 “지난해 머플러를 구매한 고객들에게서 폴더에 납품을 하고 있는지, 왜 똑같은 제품을 반값에 판매하는지 항의가 들어와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며 “길이, 폭, 니트 머플러의 핵심 아이디어는 물론 원사, 제품의 혼용률(섬유 구성), 스트라이프의 색상 배색까지 똑같다”고 설명했다.

 

또 "소규모 브랜드는 각 제품을 디자인 등록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며 "대기업이 소규모 브랜드는 법적 절차까지 쉽게 밟을 수 없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회사 관계자는 “유통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공들여 만든 결과물을 마음대로 쓰면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랜드측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디자인으로 도용은 절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파장이 커지면서 일단 매장에서 상품을 전량 철수했다.

 

현재 조치과정에 관한 질문에 이랜드 관계자는 "현재 A브랜드와 협의중에 있는 단계이다. 이의제기가 들어온 제품은 판매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곧바로 수거조치에 들어갔다"며 "디자인 자체가 많이 통용되는 디자인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디자이너는 현재의 도용논란이 있기 전인 작년초에 퇴사했다.

 

이랜드가 도용 논란에 빠진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랜드는 지난 5월에도 자사 소품샵 ‘버터’를 통해 국내 제품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제품을 절반 가격에 팔아 물의를 빚었으며, 2월에는 의류브랜드 ‘미쏘’에서 중소브랜드 ‘빈티지 헐리우드’ 액세서리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판매해오다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9월 15일 특허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연배 이랜드 대표는 중소기업의 디자인을 도용한 것을 사과했다.

 

아울러 도용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검증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디자인 도용 논란이 불거져 디자인 약탈로 국내외 유통시장을 공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유사도용사태에 관해 이랜드 관계자는 " SPA 상품 특성상 워낙 많은 상품 출고가 되고 있어서, 재발방지를 위해서 내부적으로 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단계다"고 답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실히 밝히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디자인을 베꼈다라는 걸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기본 절차인 디자인 등록마저도 절차가 복잡하고 출원신청에도 돈이 들기 때문에 개인이나 작은 업체에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 업계의 생리를 악용하는 대기업들이 디자인을 모방·도용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으나,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결국엔 기업들의 '도덕성 문제'로 결부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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