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아직 선거구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비후보 등록까지 받았다. 연말까지 선거구 문제가 매듭짓지 못하면 전국의 선거구가 모두 무효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여야대표들은 연일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하는척하면서 갈라서곤 한다.

 

현역의원들은 느긋하지만 신인들은 답답하다. 마지막 순간에 선거구는 게리맨더링으로 타협을 하겠지만 각 당의 공천후보자들은 경선을 놓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우선은 지역구후보가 되기 위해서 경선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 있지만 비례대표를 노리는 은밀한 노력이 물밑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을 것은 불문가지다.

 

지금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각 계파의 싸움이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어느 쪽으로 승부가 기울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여당은 친박과 비박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진박, 원박, 중박이 따로 논다. 친박에도 계급이 있다. 심지어 조원진은 친박감별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병아리 암수감별사처럼 진박이 아니면 가차 없이 내동댕이친다는 뜻인가. 그러나 여당의 싸움은 청와대와 당대표의 상징성이 뚜렷해서 상당부분 정리될 것이다. 문제는 야당에 있다. 새정치연합은 계파싸움을 넘어 이미 분당단계에 들어섰다. 문재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더니 기어코 안철수의 탈당수가 터졌다. 안철수는 정치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처음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냥 밀고 나갔더라면 낙승할 수 있었을 텐데 박원순과의 담판 끝에 스스로 포기했다. 대통령선거에도 명함을 내밀었다가 문재인에게 후보를 넘겼다.

 

그 후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새정치위원회를 만들어 설쳐대다가 이마져 ‘철수’하고 김한길의 제의를 받고 민주당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되어 제일야당의 대표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솟아올랐다가 어느 순간 가라앉고 말았다. 국민 사이에서는 그의 이름대로 항상 물러나기만 하는 것을 비꼬아 ‘철수정치’라고 냉소하기 시작했으며 그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그런데 그를 살려낸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문재인이다.

 

사퇴압력에 시달리던 문재인은 이를 벗어날 절묘한 꾀를 냈다.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삼각라인의 구성이다. 박원순은 덥석 받아드렸지만 안철수는 달랐다. 울고 싶은데 뺨때린다는 속담처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는 ‘혁신전당대회’라는 역제안으로 자기주가를 높이기 시작했다.

 

문-안-박 제의가 없었다면 안철수의 역제의는 한낱 비주류측의 외침으로 끝났을 것을 이제는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이 제안을 수용할 수 없는 친노측에서는 맹비난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안철수는 탈당의 명분을 세웠다.

 

야당을 분열시켰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만 문재인에 대한 비노그룹의 거센 반발을 누구러뜨리기에는 너무나 각박한 친노의 옹고집이 분당을 자초한 셈이다. 전남과 광주 등 호남의 정서는 이미 문재인을 떠났다. 매일 탈당의원들이 쏟아지고 있어 안철수당은 곧 20명의 의원을 가진 제3당이 될 것이 분명하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새 당으로 총선에 임하여 과거 12대 선거 때 민추협과 신한민주당으로 돌풍을 이뤄내 제일야당 민한당을 쑥밭으로 만들었던 전철이 되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안철수의 정치가 어떻게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가겠느냐 하는데 달렸다. 그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신념이 과연 낡은 진보를 지양(止揚)하고 중도적 진보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지 국민들은 냉정하게 지켜본다.

 

지금 극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극우와 극좌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를 활짝 펴고 중도 진보의 가치를 일궈낼 수만 있다면 안철수는 성공한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모두 내려 놔야 한다. 요즘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이 앞장서 유명유력인사들에게 험지출마를 설득하고 있다.

 

안철수 역시 험지를 택해야 한다. 전북은 유성엽 하나 빼놓고 모두 친노다. 안철수가 전남과 광주에만 신경 쓰다가 전북을 놓치면 절름발이가 된다. 전주지역구를 선택하는 것이 돌파의 정치가 되지 않을까. 전북의 붐은 전국의 환호성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안대희 오세훈을 반쯤 설득한 셈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김황식과 정뭉준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남 서초 등지에는 친박후보 희망자들이 줄을 섰다. 대구 경북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투표성향으로 보면 이들 지역은 새누리당의 낙지(樂地)다. 현 정권에서 청와대와 내각 등 요직을 휩쓸며 이름을 드러낸 사람들이 이제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모두 사표를 쓰고 나왔다.

 

그동안 TK 인사들의 등용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을 확인이라도 하는 양 그들 대부분이 ‘낙지’ TK에만 몰린다. 선출직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먼저 필요하다. 전쟁에 나간 군인이 몸을 사려 총알을 피할 수 있는 은폐물 뒤에만 서있으면 그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땀을 많이 흘리는 고된 훈련을 받아야 피를 적게 흘린다는 전쟁교훈은 선거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낙지보다는 험지를 선택할 줄 알아야 나라가 튼튼해진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투철한 애국심을 가진 자만이 축배를 들 수 있어야 되겠다. 눈 밝은 국민들은 그를 가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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