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야당의 선대위원장이 확정되었다. 더민주에서는 김종인을 영입하였고, 안철수당으로 더 알려진 국민의당에서는 한상진과 윤여준을 투톱으로 하는 선대위원장으로 진용을 짰다.

 

모두 당대에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지만 어쩐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윤여준과 김종인의 정치행각과 관련되어서일게다. 윤여준은 세상이 다 아는 정치 멘토의 타이틀 보유자다. 환경부장관을 지냈지만 한 때 학벌문제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회창의 두 번째 대통령 도전 때 최고참모를 지냈는데 이기택 김윤환 조순 신상우 등을 공천에서 제외하여 다 된 밥에 콧물을 빠뜨렸다는 구설을 들어야 했다. 김종인은 주로 여당에서 국회의원 장관을 역임한 경제전문가로서 지난번 대선에서는 박근혜후보의 경제참모였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신봉하면서 박근혜 당선 후에 의견이 갈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정적이었던 문재인의 손을 잡았다. 오죽 사람이 없으면 그런 경력의 소유자들을 20대 총선 최고지휘봉으로 추대하는 지 의문이 생기지만 그래도 한상진은 떼 묻지 않은 서울대 교수출신으로 신선한 감을 줬다.

 

그도 김대중정권 하에서 정책브레인으로 일했다고 하지만 벼슬살이는 하지 않았기에 기대를 걸만한 ‘신인’거물로 분류된다.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민의당이 더민주 탈당바람과 함께 국민의 지지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기대가 깨진 것은 오래가지도 않았다. 잘 나가다가 일이 틀어지면 흔히 호사다마라고 한다. 좋은 일에 마가 끼면 산통이 깨진다. 올라가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렵지만 곤두박질치는 것은 찰나(刹那)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산악영화 히말라야를 보면 8천 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에 천신만고를 다하여 올라가더라도 순식간에 몰아치는 눈사태를 만나면 엄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 속에 파묻히고 만다. 안철수가 신당을 꾸미면서 겉으로 내세운 제일기조는 ‘낡은 진보의 청산’이었다.

 

낡은 진보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통진당과 비슷한 더민주의 행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극좌적 이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더민주를 고수하고 있는 친노세력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들의 성향은 진보좌파로 분류되고 있으며 안철수는 철저하게 그들과의 차별화를 노려 낡은 진보 청산을 내건 것이다.

 

결국 중도좌파나 중도우파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진보든, 보수든, 좌파건, 우파건 이념을 가지고 시시비비할 생각은 없다. 국민은 각자의 사상과 이념에 따라 어느 진영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당을 만든다는 사람들의 이념성향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지명된 한상진은 과거 진보 쪽으로 분류되어 왔었다.

 

그런데 창당준비 신고를 하고 현충원을 참배하면서 전직대통령 묘소를 모두 찾았다. 이승만과 박정희묘소를 참배한 것은 진보좌파가 하지 않는 행동이다. 잘한 일이다. 멀리 노무현까지 찾은 다음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한 것은 당연한 순서다. 문제가 터진 곳은 여기다. 한상진은 이승만과 4.19혁명과의 관계를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이승만은 전직대통령이니까 참배한 것이고 4.19묘지는 독재타도에 앞장섰다가 경찰의 총탄에 쓰러진 186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에 참배하는 것이라고 점잖게 말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찌하여 이승만의 공과를 얘기하며, 무엇 때문에 이승만을 국부라고 지칭하는가.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분으로 그 공로를 결코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그때 만들어진 뿌리가 그 잠재력이 점점 성장해서 4.19혁명에 의해서 드디어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우리나라에 확립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4.19혁명은 이승만의 가르침에 따라 일어난 혁명이라는 말인데 이것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상진’의 역사의식이란 말인가. 4.19혁명은 정부수립이후 12년 동안 가부장적으로 부정과 독재를 자행한 이승만의 영구집권 야욕에 저항한 학생들의 궐기였으며 이를 무자비하게 경찰의 총탄으로 진압한 백색독재를 타도한 혁명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최고의 지성이 있단 말인가. 참으로 한심하다.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4.19혁명공로자로서 건국포장을 수상한 김종서동지는 1월15일 국민의당 마포당사를 찾아 한상진과 안철수 면담을 요청했다. 공직자 출신답게 흥분을 감추고 예를 다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마침 출타하려던 한상진을 복도에서 만나 짧은 항의대화를 나누고 한상진 개인의 뜻으로 얼버무리지 말고 공당의 선대위원장으로서 공식적인 당 의견을 발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상진의 이번 발언파문은 호사다마가 아니라 호사일마(好事一魔)다. 한 사람의 경솔한 발언 때문에 국민의당은 더민주로부터 수구꼴통으로 몰리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고 정치적 죄업으로 하와이로 망명했던 이승만을 이승만기념사업회의 대변인이라도 된 양 추어주고 존경하는 뜻을 표한 것은 보수표를 의식했다가 집 토끼마져 놓치는 대우(大愚)를 범한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현명한 대비책은 한상진의 재빠른 사과 외에는 아무 약발도 먹히지 않는다. 유대인에게 엎드려 빌었던 브란트의 독일은 오늘날 유럽의 지도국으로 우뚝 섰지만 끈질기게 사죄를 아끼는 일본은 경멸의 대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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