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상해를 찾았다.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상해의 모습은 우리 언론을 통하여 잘 알려졌다. 과거와는 달리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중국의 판도를 대표하는 상해는 북경 올림픽에 뒤이은 세계박람회 개최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나라들이 부침했지만 상해를 수도로 했던 나라는 없다. 그러나 상해는 어떤 도시보다도 유명하다. 아니 수도인 북경보다 이름난 도시다. 그것은 금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뉴욕이 수도가 아니면서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치와 같다. 중국경제의 바로미터는 상해에서 비롯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400대기업 중에서 300대기업이 상해 포동에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동방명주는 상해의 상징이며 자랑거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빌딩 사이로 펼쳐진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초라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고달픈 삶을 대표하는 듯 의젓하게 만 보인다.

좁디좁은 오래된 거리와 쭉쭉 뻗은 신시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가는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중국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은 1949년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내쫓고 대륙을 공산당 천지로 만들었다. 국공합작을 통해서 항일운동을 벌이며 명맥을 유지하던 모택동의 공산군은 여축했던 장정의 힘으로 중국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맨 처음 대륙을 통일한 영웅은 진시황이다. 그 후 온갖 제후들이 각자의 나라를 이끌어 오다가 원·명·청 등이 강권으로 다스렸지만 모택동만큼 완전무결한 통일을 완수한 적은 없다.

아직도 대만이 존재하지만 양안(兩岸)관계는 남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돈독하다. 모택동은 이념 하나로 인민공사와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지만 경제적으로는 빈곤을 면치 못했다. 후계자인 등소평은 독재자의 상투수법인 전임자 격하운동을 펼치지 않고 오히려 모택동 영웅화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개혁 개방으로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표명하면서 실질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돌아섰다. 14억의 거대한 인구는 세계의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시장이다.

값싼 노동력으로 저가상품을 만들어 개미처럼 수출하던 것이 이제는 중저가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유인 우주선을 자체개발하는 과학의 힘은 이제 최고가의 IT분야까지도 넘보게 되었다. 게다가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이 되어 G2를 형성하고 있으니 중국의 위상은 세계강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왕년에 어깨를 재던 일본은 미국보다 중국의 눈치를 더 살펴야 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다.

물론 아직도 중국의 GNP와 GDP는 미국과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경제의 규모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일은 작아 보인다. 한국 역시 미국·일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중국시장을 엿보며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콧대는 옛날과 다르게 높다. 공장부지와 인프라 시설, 세금감면 등의 특혜는 이제 없다고 봐도 될 만큼 중국의 해외자금 유치정책이 바뀌었다.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펼쳐지고 있는 엑스포는 중국 저력의 시험대이자 과시장이다. 엑스포의 열기는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후끈 달아 있다. 가뜩이나 상해의 기온은 천정 모르고 높기만 하다. 8.15를 전후한 상해의 날씨는 그냥 덥다고 하기에는 기이한 뜨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공식적인 기상청의 발표를 보면 최저 30도에서 최고 39도로 되어 있지만 자동차에 장치되어 있는 바깥 온도는 44도를 오르내릴 정도다.

사람의 체온을 윗도는 열기지만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수만 관중이 뙤약볕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언제 차례가 올지 까마득한 시간에 불쾌지수를 표명할 법도 한데 그런 사람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덥다, 덥다”를 외치는 사람은 한국인뿐이다. 중국인들은 더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즐기는 모습이다. 만만디 속에 중국의 내일을 바라보며 한국관과 중국관을 중심으로 관람의 발길을 움직인다.

100여개 국가에서 참가했지만 겉모습만 보며 주마간산으로 즐긴다. 끝없이 늘어선 관람객에 섞여 있어서는 한이 없다. 다행히 한국관 공연 예술 총감독인 심가희단장이 ID카드를 내줘 VIP 코스로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시원한 수증기를 내뿜는 서비스로 더위를 식혀준다. 한국관과 중국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기획물로 그득하다. 상해의 내일도 여기서 시작한다. 우리 독립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상해의 거리에서 선열들의 뜨거웠던 애국정신을 일깨우며 ‘예술의 거리’나 ‘신천지’의 밤 풍경에 넋을 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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