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정신 없이 분주해 그들 선거법에 저촉 된지도 몰라”..

▲ 독립유공자 협회와 지난 광복절에 담소를 나누는 김원웅 전 의원 2010.08.15    © [이중앙뉴스=지완구 기자]
검찰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김원웅 전 의원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기로 했다.

의정보고서 배부와 관련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당 소속 대덕구 기초의원들에 대한 대전 고등법원 이민걸 판사 심리로 열린 첫 항송심 공판이 끝난 직후 김원웅 전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재판장에게 제출한 탄원서를 공개 문제가 되고 있는 의정활동보고서 제작.배포에 본인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김 전의원은 탄원서에서 대전대덕 구의원 이의원3명은 의정활동보고서를 제작․배포하자는 “본인의 권유에 따랐을 뿐”이며, 의정보고서 문안을 작성하는데도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김 전의원은 “당시는 지방선거 구의원 공천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고 공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본인에게 3명의 의원은 호감을 사야 될 상황이었다”며 법률적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김 전의원은 이들3인은 “의회정치적 동료이고 아직은 나 보다 젊고 대전 대덕과 국가를 위해 할 일이 많다며” 검찰과 재판부에 탄원호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여의도 정가)소식에 따르면 동료 정치인들은 “과연 독립군의 후예답다” “역시 김원웅 답다”며 격려 했다고 한다.

이젠 검찰수사는 초 읽기에 드러간 것 같다. 김원웅 전 의원 측근의 말에 따르면 김 전의원의 건강 상태가 좋지않아 잠깐 강원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전했다.

김 전의원의 전 의정활동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국회의원, 청렴하기로 가장 으뜸인 국회의원으로 정평이 났다. 한 동료의원은 “물이 너무깨끗해 밑에서 실수 한것”을 왜 그분이 책임을 갖을까? 하고 개탄했다.

향후 대전지검의 조사가 귀추된다. 다음은 김원웅 전 의원의 위키백과다.

김원웅(金元雄, 1944년 음력 3월 8일~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독립 운동가 김근수, 전월선의 장남으로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다. 14대,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국회윤리특위장,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노무현 제16대 대통령과 함께 식당 ‘하로동선’ 대표를 역임하였다.

생애
일제 말기인 1944년 3월 8일(음력)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사천성 중경(重慶)시(현재 중경직할시 중국식발음 충칭 chong qing)에서 독립군 부모인 김근수, 전월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의 부모는 백범 김구의 중매로 연을 맺었다. 해방이 되자 이들 가족은 배를 타고 양자강을 따라 중국을 떠나 부산을 거쳐 고향 대전에 정착하였다. 졸업 후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의 공채직원으로 들어가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공화당, 민정당을 거쳐 1990년 3당 합당으로 생긴 민자당의 합류를 3당 야합이라 비판하며 탈당한다. 노무현, 제정구, 유인태 등과 꼬마민주당을 창당했으며, 처음으로 14대 총선에 출마하여 국회에 입성하였다. 1992년 14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제정구 등 초선의원 12명과 함께 “깨끗한 정치실천”을 하여 모든 정치인과 공직자의 재산공개, 정치자금 공개를 주도하였다. 1995년 국민학교의 명칭이 일제가 황국(國) 신민(民)의 줄임말이기에 일제잔재청산을 위해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데 공헌하였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대전 대덕에서 낙선한 후 노무현 등과 함께 서울 역삼동에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처럼 언젠가 때를 만나면 소중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라는 뜻의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상호로 식당을 개업했다. 이후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노무현과는 달리 신한국당과의 합당에 합류하여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으며, 2000년 16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대전 대덕구에 출마하여 충청권에서 유일한 한나라당 당선자가 되었다. 그러나 개혁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잇따른 소신 발언을 하였고 이로 인해 김용갑 등과 같은 보수 성향의 의원들과 갈등을 많이 빚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회창 대세론을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시류를 비판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2002년 개혁당에 현역의원으로 합류 공동대표가 되면서 노무현정권 창출에 공을 세웠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선의원이 되었다. 17대 국회 하반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으로 재임하였으며, 개혁 민족노선을 주장하며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 출마하진 못하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야4당(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연합후보로 대전시장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학력

약력
  • 대학 시절 한일회담을 굴욕적이라 비판하며 투쟁하다 투옥
  • 정치부기자들이 뽑은 ‘깨끗한 정치인’ 선정(95)
  • 녹색정치인상 수상(환경운동연합, 00)
  • 국회의원 성적표 273명중 1위(경실련, 01)
  • 민족사 정립 공로상 수상(민족문제연구소, 06)
  • 국민학교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꿈(교육법개정, 95)
  • 독립기념관 이사(92~96)
  • 유네스코 한국위원(95~96)
  • 식당 ‘하로동선’ 대표(97~99)
  • 통추 대변인(96~99)
  • 민화협 공동의장(03)
  • 북관대첩비 환수위원회 위원장(05~06)
  • 조선왕조실록 환수협상단장(06)
  • 해외입양인연대 이사장(현)
  •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현)
  • 민족평화축전 조직위원회 회장(현)
  • 개혁당 대표(03~04)
  • 국회 윤리특별위원장(04~06)
  •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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