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섭 기자의 말말말] 유년(幼年)의 설날..그리고 어머니 사랑

 

설날이 되면 웬지 좋은 일들만 있을 것 같아 늘 좋다. 설날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린아이는 물론 꽃다운 청춘들이 새해 첫날 새 옷을 입고 어른을 찾아 세배를 드리고 시절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것이리라.

 

게다가 한 해의 시작이 열리는 아침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더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旦), 원일(元日), 신원(新原)이라고 불렀다. 근신·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한문으로 신일(愼日)이라고도 쓴다.

 

어릴적 설날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주일 전부터 동네 꼬마녀석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고 설레이게 했다. 몰려다니며 세배도 하고 썰매도 타고 팽이도 돌리고 눈깔사탕 하나로 행복해 하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그시절,

 

더욱이 때때옷으로 불리던 설빔을 장만한다는 것은 그시절엔 사건중에서도 너무나 즐거운 사건이다. 1년에 한번 얻어 입을까 말까 한 설빔은 부모님들이 먹을것 안먹고 쓸것 안쓰고 한푼 두푼 모아두엇던 쌈지돈을 다 풀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요즘말로 확근하게 지르는 날이다.

 

설 대목 큰 장날이 열리는 날, 까까머리 소년의 뗑깡을 나몰라라 뒤로하고 장거리(場距離)를 장만하여 집을 나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눈에 선하다. 졸린눈 비벼대며 이제나 저제나 싸릿문 깡통소리 들리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소년의 눈꺼풀은 천근만근이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동생은 이미 잠이 들고 어둠이 어둑어둑 땅거미를 덮을무렵 어머니가 양손에 선물 꾸러미를 바리바리 싸들고 싸릿문에 들어선다.

 

어머니가 까치설에 사온 설빔 옷에 기쁘고 좋아서 날뛰던 추억이며, 장터 주점에서 대포 몆사발로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설 선물로 주려고 고무신 몇 켤레 사들고 달이 환한 마차 길을 외줄타기 하듯 갈지자 걸음이 늘어질 쯤이면 어머니는 세배오는 까까머리 누런코 친구들 주려고 세배돈 대신 엿을굽고 강냉이를 뭉쳤다.  

 

설날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세뱃돈이다. 공식적으로 머리한번 조아리고 현금을 만질수 있도록 조상님들께서 공식적으로 허가해준 수금날이다. 맛난 음식에 세뱃돈까지 덤으로 받는다는 생각에 동네 꼬마들은 어른들만 보면 무조건 똥구녕을 하늘로 쳐들고 엎드렸다.

 

언놈은 주머니 여럿달린 형아 바지를 입기도 하고 언놈은 아예 돈주머니를 제작해서 들고 다녔다. 그렇게 동내 한바뀌를 다 돌때 쯤이면 꼬맹이들 주머니엔 동전이며 지폐가 가득했다.이날 만큼은 세상 어느누구도 부러울것 없는 동네 갑부다.수십년이 지난 지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설날이 재미없는 날로 기억되기 시작 했다. 돼지기름 지글거리는 소리며 엿굽는 소리도 사라지고 동네 어귀 떡 방앗간 한 구석에서 방앗간 아제가 가래떡 한덩이 잘라주며 꼬찔찔이 소년의 머리통에 군밤 날리던 추억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골목마다 맷돌 돌리는 소리며,절구소리는 아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당 한가운데서 떡매치던 아버지의 가뿐 숨 소리도 그저 옛날 영화에서만 나오는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다.

 

유년 시절에 받았던‘설빔 장만’의 기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됬지만 꼬 찔찔이 소년은 무럭무럭 자라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지금을 모두 돌아가신 내 부모님들이 그랫던 것 처럼 나도 내 가족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싶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이 모두의 마음은 아니라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무정한 세월은 기쁜날 슬픈날을 구별하지 못한다.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시대의 아픔을 보았다면 그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설날이 오히려 반갑지 않고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설 명절의 호사로움을 누구나 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조사에 의하면 설 연휴에 10명중 6~7명의 가족들이 귀향을 포기했다고 한다. 돈이 없어 가족 품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그렇고, 취업때문에 고민하는 취업준비생들이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취업을 한 뒤에도 부모님들의  '결혼' 잔소리를 피해 나홀로 여행을 떠나는 노총각, 노처녀들도 있다. 이 모두가 명절이 반갑지 않은 ‘그들’의 슬픈 마음이다. 그래도 평생을 자녀들을 위해 살았던 삶이 이번 설에는 위로받을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라도 해보자. 그래야 덜 섭섭할 것 같다.

 

이제 음력설이 코앞이다. 벌서부터 귀향의 발길이 분주하다. 누구는 1년만에 누구는 몆년만에 고향을 향해 마음도 선물도 풍성하게 담고있다.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오늘도 저녁 노을에 스쳐간다. 

 

가난 했지만 넉넉했던 산동네의 설이 그리워지고, 해처럼 맑은 인자했던 이웃 아저씨들이 그리워지고, 세배 다니던 동네 친구들이 그립고 또 그립다. 지금은 사라진 싸리대문과 초가지붕 고드름이 그립고 마당 한가운데 소박한 우물과 실개천이 그리워진다.

 

아주 오래전 내 유년 시절 설날의 기억은 가난했지만 그리 분주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어머니의 정성은 지금도 눈시울 뜨겁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사랑이 목마르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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