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연극배우 '주호성'.. 연극 '빨간피터'로 대학로의 봄을 연다

원숭이 눈으로 본 인간 사회..당신은 출구를 찾았습니까?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빨간피터'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 지난 17일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빨간피터'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 중앙뉴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원작으로 한 연극 '빨간피터'(연출 주호성)는 밀렵꾼에게 포로로 잡힌 원숭이 '피터'가 인간의 행동과 인간세계를 배워나가면서 인간사회가 겪는 각양각색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내용의 일인극이다.

 

연극 '빨간피터'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극으로, 故 추송웅을 포함해 전 세계 많은 배우가 소화한 모노드라마로 우리에게 익숙한 연극이다.

 

삶의 목표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빨간 피터>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을 반추하고 관조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인간군상의 부조리를 설파, 참된 인생을 논하는 원숭이 피터로 분해 90분간의 명연기를 펼친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고한 연극배우 추송웅이 초연한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필두로 김상경, 장두이, 이원숭 등의 배우들이 다투어 공연한 바 있다.

 

◆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인극 무대에 서다  

 

탈출을 위해 인간의 삶을 선택한 원숭이가 있다. 그는 자신의 본능과 인간의 본능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의 주인공이다.  

 

‘빨간 피터’는 인간에게 포획되어 ‘유인원 인간화 훈련’을 마친 원숭이가 자신의 눈에 비친 인간 사회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출구를 찾기 위해 살았던 그가 현대인에게 던지는 ‘당신은 출구를 찾았습니까’라는 예리한 질문이 극을 관통한다.  

 

주호성(66·장연교)은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35)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평생 연극인의 삶을 살아온 연극 배우다. 20대 초반에 출연한 모노드라마 '환타지卍'(1969), 40대 초반에 작업한 또 다른 모노드라마 '술'(1987)로 자신의 끼를 숨김없이 무대에 풀어 놓았다.

그런 그가 ‘빨간 피터’로 세 번째 일인극 무대에 선다.

 

‘빨간 피터’와 주호성의 인연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나라와 중국에 머물었던 주호성은 “중국어로도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

 

외국어 연기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장나라와 싸우고 토라진 상태였을 때, 마침 장나라의 북경 음반발표회가 있었고 주호성은 “6개월 후에 중국말로 모노드라마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중국말이 서툴러도 원숭이가 인간의 말을 배운 것이라 상황에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고 “대한민국 연극 배우 명예를 걸고 열심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중국어를 공부하고 아파트 주민, 동네 사람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극을 만들었다.

 

산동성 제남에서 열린 ‘제3회 세계소극장연극제’에서 연출상, 작품상, 연기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2016년 붉은 원숭이해를 맞아 한국 공연을 결정했다. 결국 연극 '빨간피터'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딸 장나라 때문에 탄생된 연극이다.  

 

▲ 주호성(66·장연교)은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35)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평생 연극인의 삶을 살아온 연극 배우다.     © 중앙뉴스

 

◆ ‘투란도트’ 이후 한국에서 하는 첫 작품  연극 '빨간피터'

 

제작발표회날 주호성은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무대에서 만나는 것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2003년 주요철 연출과 함께했던 ‘투란도트’ 이후 한국에서 하는 첫 작품으로 새로운 기분으로 “관객을 만나는 날을 가슴 설레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주호성은 정말 관객들과 잘 만나고 싶어서 그 어느때보다 노력을 더 했다고 했다. 대사도 지난달에 다 외우고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 예술인들에게 평단공연(프리뷰 공연)을 실시하고, 최근에는 청주대학교 연기전공학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시연회를 열어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갖고 관객과 만날 날을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과거에 무대에 올려졌던 공연들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모노드라마는 극을 이끌어감에 있어 지루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꼭 해결해야 완성도가 높을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故 추송웅 선배의 경우 천재적으로 관객을 끌고 가는 힘이 있는 배우였다고 치켜 세우기도 했다.

 

나는 이 작품이 왜 오늘 공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과 함께 현대인들에게는 출구가 있는가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라며 “카프카의 이야기와 이 작품이 말하는 오늘의 출구를 관객들과 교류하며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주호성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던 시절” 선보였던 이전의 일인극과 달리 이번 작품은 “세상을 많이 알게 된 나이이기에 카프카의 세계와 오늘을 설득력 있게 잘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기에 관객 만날 날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 했다.     

 

▲ 주호성은 정말 관객들과 잘 만나고 싶어서 그 어느때보다 노력을 더 했다고 했다.     © 중앙뉴스

 

◆ 연극 '빨간피터' 원숭이의 눈으로 본 인간 사회

 

우연히 인간 생활에 융합된 한 원숭이는 그의 독특한 시각으로  인간사회에서 겪어본 경력을 진술한다. 그의 진술로 그가 어떻게 다른 원숭이들과 달리 인간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피터는 원래 자유롭고 행복한 원숭이였지만 하루 아침에 인생이 바뀌어 버린다. 그는 밀렵꾼에게 잡혀 포로가 되고 철창에 갇혀 온갖 수모를 당하여 결국 지쳐버린다. 피터는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처음에 간단한 인간흉내를 내더니 차근차근 인간의 행동을 배우기 시작한다. 피터는 내키지 않았지만 인간처럼 악수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이는 모두 현재 닥친 곤경을 벗어날 출구를 찾기 위한 선택이었다.

 

피터는 인간세계의 많은 것들을 배운다. 차츰 원숭이의 본성을 잃어가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된 것도 아니다. 인간사회가 겪는 각양각색의 문제점에 대해 피터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피터는 나이가 늘수록 꿈을 자주 꾼다. 옛날에 겪어본 경험들이 영화장면처럼 꿈에서 반복되는데 자신이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찾지 못해 당혹해 한다. 피터는 다른 원숭이들에게는 없는 지식과 명성을 얻고 인간처럼 생활하고 즐길 수 있다.

 

그는 계속 생각해 왔던 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결과는 과연 어떨까? 과연 마지막에 출구를 찾았는지 피터가 알려줄 것이다.

 

◆김태수 작가와 주호성의 인연은 남다르다

 

주호성의 ‘일인극 <빨간 피터>’는 2008년 중국 북경의 선봉극장에서 절찬리에 공연되었던 주호성 각색, 연출, 주연의 중국어 연극을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장인 작가 김태수가 우리말로 다시 각색해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따듯한 봄을 기다리는 연극팬들에게 감동의 무대를 선사한다.

 

김태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극작가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미스터 옹을 찾아라>, <바리야 청산 가자>, 뮤지컬<울지마 톤즈>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코믹하고 유려하면서도 뛰어난 문학성을 자랑하는 날카로운 대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김태수 작가와 주호성의 인연은 15년전 김태수의 대표작인 <꽃마차는 달려간다>를 주호성이 연출하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2013년 <인물실록 봉달수>에서 다시 한번 작가와 연출가로 호흡을 맞춰 절찬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주호성은 김태수 작가에 대해 “중국의 유머와 한국의 유머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김태수 작가는 중국공연보다 훨씬 재미있는 연극으로 승화시켜주었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김태수 작가 역시 “주호성 선생의 <빨간 피터>가 연극성과 공연성, 연극이 지녀야 할 문학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이 되리란 것을 확신한다”라며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주호성의 ‘일인극 <빨간 피터>’는 인간에게 포획되어 ‘유인원 인간화 훈련’을 마친 원숭이의 눈으로 본 인간 사회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다. 삶의 목표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빨간 피터>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을 반추하고 관조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원숭이 피터의 눈으로 본 인간군상의 부조리를 설파, 참된 인생을 논해 보는 작품이다.

 

주호성은 “이 연극은 청년기부터 꼭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2003년 중국에 진출한 딸 장나라가 중국어로 연기하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다른 나라 말로도 연기가 가능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려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는 것,

 

스스로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욕으로 장나라의 북경 ‘음반 발표회장’에서 발표부터 해버렸다”라며 “연습하면서 ‘이걸 왜 한다고 했나’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6개월 넘게 연습에 힘을 쏟았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고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초연을 하게 됐던 이유를 전했다.  

 

뿐만 아니라 주호성의 북경공연은 한국적인 연극형식을 갖춰 중국 연극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고, 많은 중국인에게 새로운 방식의 <한중교류>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2008년 중국 북경에서 중국어로 초연한 이후 산동성 제남에서 개최된 <제3회 세계소극장연극제>에 참가, 연출상, 작품상, 연기상 등 3개 부문의 수상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주호성의 무대를 본 중국 평론가는 "호랑이는 늑대를 낳지 않는다"라며 딸 장나라와 함께 아버지 주호성을 극찬하는 절묘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주호성은 “소원대로, 한국에서 우리말 공연을 하게 돼서 기쁘고 즐겁다. 대사도 김태수 작가가 매끈하고 재미있게 써줘서 감정도 더욱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국 공연의 소회를 전했다.

이어 “이 연극은 스스로 연출하며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한국 공연에도 연출은 없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시연회를 개최, 매일 다른 관객들을 불러 시연한 후 가감없이 비평과 충고를 들었다.

 

주호성은 2008년 초연 당시 함께 했던 분장사 정완식과 다시 호흡을 맞춰, 중국 공연과 마찬가지로 ‘싱크로율 100%’ 파격적인 원숭이 분장으로 무대에 나선다. 중국 공연 당시, ‘북경 신경보’는 분장솜씨가 놀랍다며 한국 분장사 정완식을 특별 인터뷰까지 했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주호성은 한국 공연에 앞서 작가 김태수에게 연락해 한국어 각색 작업을 부탁했다. “한국어를 누구보다 잘 활용한다는 것”이 김 작가에 대한 주호성의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김 작가 언어의 재미 때문에 꽤 볼만한 작품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게 평가했다.

 

이에 김태수는 “극의 방법을 따라가되 나만의 방법으로 새로이 구성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이 원숭이가 가장 원하는 것은 탈출이다. 소설에도 나와 있는 출구에 대한 메시지를 여러 방법으로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숭이가 인간화되는 과정이 극 안에 계속 나올 것”이라며 “인간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니지만 실존해야 하는, 실존주의적인 철학적 메시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호성의 <빨간 피터>는 연극성과 공연성 등 연극이 지녀야 할 문학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앞서 여러 명의 배우가 비슷한 제목으로 공연을 했던 것들보다 가장 우수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주제가 돋보이고, 내용이 튼실해지며, 관객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행복해하는지 알고 있는 연극 달인 주호성이 혼신을 다하는 작품이기에 가능하다. 또한 작품 속에 그려진 상황이 현시대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여

문학의 알레고리란 관점에서 커다란 인지적(認知的)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 '빨간피터' 는 실존적 현실을 매우 시리어스하게 보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소설가 카프카와, 비극적 내용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보고 한 대사 한 대사를 가슴으로 토해내는

연극배우 주호성과의 만남이 이번 작품의 핵심이 될 거라는 걸 믿기에 필자역시 연극배우 주호성의 팬으로 뿐만 아니라 연극 비평가로서 이번 연극 '빨간피터' 에 거는 기대가 크다.

 

1인 연극 '빨간피터' 는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동숭동 예그린씨어터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갖는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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