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

[중앙뉴스=임효정 기자] 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맨발로 집을 뛰쳐나온 한 소녀로 인해 전국의 학대받는 아동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의 집중적인 조사에 의해 밝혀지는 사실들은 처참한 결과만을 알려주고 있다. 부모에 의해 이미 숨진 아동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밝혀진 아동 학대 관련 실태에 대해 <중앙뉴스>가 속속들이 파헤쳐 봤다. 또 앞으로는 이러한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굿네이버스와 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맨발의 소녀, 전국의 학대받는 아동들을 구하다

11살 딸을 2년 여 간 집에 감금한 채 때리고 굶기는 등 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30대 아버지가 24일 검찰에 송치됐다. A양이 지옥과도 같은 집을 빠져나온 것은 지난 12일 오전 10시 30분. 세탁실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자 아버지 B(32)씨는 "허락 없이 나왔다"며 빨간색 노끈으로 딸의 손발을 묶었다.

 

▲ 한 소녀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아 며칠째 거의 물만 먹고 지낸 A양은 너무 배고픈 나머지 탈출을 결심했다. A양은 뒤로 묶인 손의 노끈을 풀고 2층 창문을 나와 가스 배관을 타고 집 밖으로 나왔다. A양은 작년에도 탈출을 시도해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있지만 길을 가던 음식배달원이 A양의 남루한 행색을 보고는 집에 데려다 주는 바람에 다시 감금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A양은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에 맨발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집에서 약 150m 떨어진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A양은 무엇에 홀린 듯 바구니에 과자·사탕 등을 마구 담다가 가게 한편에 주저앉아 과자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 맨발로 돌아다니는 아이를 이상하게 여긴 슈퍼마켓 주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당시 슈퍼마켓 주인은 "6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맨발로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을 정도로 A양은 야윈 상태였다.

 

A양이 털어놓은 아빠의 학대는 충격적이었다. A양은 2013년 가을 인천 연수구 빌라로 이사 온 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감금된 상태로 2년을 넘게 지냈다. 아버지 B씨는 직업도 없이 온종일 게임에만 몰두하다가 툭하면 손과 발로 A양을 때리고 심지어는 행거 쇠파이프도 휘둘렀다. 때리고 나서는 화장실 또는 세탁실에 가뒀다. 부천에서 2학년 1학기까지만 학교를 다니고는 그 이후로는 학교도 못 다녔다. 일주일 가까이 밥을 주지 않아 굶은 적도 있었다.

 

A양이 발견된 당시 키는 120cm, 몸무게는 16kg이었다. 11살 아이가 4살 평균 몸무게에 불과할 정도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A양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B씨와 동거녀 C(35), 함께 살던 친구 D(36·여)씨는 A양이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 달아난 뒤였다. 경찰은 14일 체포영장을 신청해 추적한 끝에 16일 오후 경기도 광명과 인천의 한 모텔에서 B씨 등 3명을 잇따라 체포했다.

 

 

친부모에 의해 토막살인 된 아이

7살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장기간 냉장고에 유기한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의 부모가 첫 재판에서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이언학 부장판사) 심리로 18일 열린 첫 공판에서 살인 및 사체훼손·유기·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아버지 A(33)씨의 변호인은 "공소사실 중 나머지는 인정하지만, 살인 혐의는 고의성이 없었기 때문에 부인한다"고 말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어머니 B(33)씨 측 변호인도 "살인 혐의는 부인하고 나머지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전날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피고인은 피해자가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방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 놔뒀을 뿐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썼다.

 

A씨는 2012년 10월 말 부천에 있는 전 주거지 욕실에서 당시 16㎏가량인 아들 C(2012년 사망 당시 7세)군을 실신할 정도로 때려 며칠 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어머니 B씨는 과거 몇 차례 폭행 외 아들이 사망하기 직전 때린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아들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이 부부는 2012년 11월 3일 아들이 숨지자 다음 날까지 시신 처리를 고민하다가 같은 달 5∼6일 3차례 대형마트에서 시신훼손에 사용할 흉기와 둔기 등 다양한 도구를 구입했다. B씨는 시신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트에서 청국장까지 산 것으로 조사됐다.

 

 

끝내 시신으로 발견된 원영이

숨진 신원영(7)군의 사인은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에 따른 외상에 의한 것이라는 부검의 소견이 나왔다. 항상 배고픔에 허덕이던 원영이는 숨질 당시 키가 112.5㎝에 몸무게 15.3㎏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왜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평택경찰서는 12일 원영 군에 대한 부검을 진행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사인은 굶주림과 다발성 피하출혈 및 저체온 등 복합적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 실종된 줄 알았던 신원영 군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구속된 계모 김모(38)씨는 지난해 11월 소변을 잘 못 가린다는 이유로 원영이를 욕실에 감금했다. 이후 원영이가 숨진 지난달 2일 오전까지 하루 1끼 정도만 먹이면서 수시로 폭행해왔다. 원영이 머리부위에서는 장기간 폭행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발성 혈종(피고임 현상)이 관찰됐고 온몸에선 멍 자국이 있었다.

 

올해 1월 김씨는 욕실에 갇혀 있던 원영이가 변기 밖에 소변을 흘렸다는 이유로 때리던 중 원영이가 넘어지면서 변기에 이마를 부딪쳐 다쳤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붕대만 감아놓은 채 방치했다. 이 상흔은 시신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1월 28일에는 원영이가 또다시 소변을 변기 밖에 흘리자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온몸에 락스를 붓기도 했다.

 

이로 인해 원영이 이마 부위 피부 조직에선 락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섬유화 현상이 관찰됐다. 또 김씨가 락스를 퍼부은 뒤부터 숨질 때까지 5일여 동안 원영이는 락스에 노출된 부작용 탓인지 계모가 주던 하루 1끼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신의 피하에선 지방이 별로 관찰되지 않았고 위에서는 내용물이 거의 없어 영양실조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왼쪽 쇄골은 오래전 골절된 뒤 유합 현상(뼈 붙음)이 관찰됐는데, 경찰은 통상 쇄골 골절의 경우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현상이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폭행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찰은 감금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폭행과 학대가 지속됐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원영이는 키가 112.5㎝, 몸무게 15.3㎏으로, 키는 같은 나이 어린이 하위 10% 정도, 몸무게는 저체중으로 관측됐다.

 

감금된 지 3개월째가 된 지난달 1일 오후 1시께 김씨는 원영이가 입고 있던 옷에 대변을 봤다는 이유로 옷을 모두 벗기고 샤워기로 찬물을 뿌린 뒤 욕실에 가둬놨고, 원영이는 다음날 오전 9시 30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오랜 폭행과 찬물 세례로 인한 저체온증, 오랫동안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한 영양실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영군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과수 소견을 바탕으로 계모와 친부에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4살 아이

숨진 4살배기 딸을 암매장한 30대 의붓아버지가 5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숨진 딸의 친 엄마는 취학 대상인데도 입학하지 않은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딸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주 청원경찰서는 물이 담긴 화장실 욕조에서 숨진 딸아이의 시신을 유기한 혐의(사체유기)로 계부 안모(38)씨를 긴급체포했다고 19일 밝혔다.

 

안씨는 2011년 12월께 당시 4살 난 딸이 숨지자 아내 한모(36)씨와 함께 충북 진천의 한 야산에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사실은 취학할 나이가 됐는데도 미취학한 아동이 있다는 학교 측의 연락을 받은 동 주민센터 직원이 안 씨 부부의 진술과 행동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학교 측이 딸이 어디 있는지 묻자 안씨는 "외가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주민센터 확인 결과 그의 딸은 외가에 없었다. 재차 딸의 소재를 묻자 "평택의 고아원에 딸을 놓고 왔다"고 말을 바꾼 안 씨를 수상하게 여긴 주민센터 직원이 경찰에 신고, 수사가 시작됐다. 아내 한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 18일 오후 9시 50분께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가족에게 미안하다.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죽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써놓고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씨는 사망 당일 정오께 경찰에 출석해 올해 9살이 된 딸이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이유를 집중 조사를 받다가 5살짜리 막내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한다며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한씨의 유서 내용을 토대로 남편 안씨를 집중 추궁해 "5년 전 딸이 숨져 시신을 땅에 묻었다"는 자백을 받았다. 안씨는 경찰에서 "오전 8시에 출근했다가 오후 9시에 퇴근했는데 그 사이 아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딸을 욕조에 가뒀는데 죽었다'고 했다"며 "그날 밤 11시께 아내와 함께 숨진 딸을 진천 야산에 묻었다"고 진술했다.

 

 

굿네이버스 등 아동보호기관의 ‘컨트롤타워’ 구축 요구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을 막기 위해 아동보호기관들이 직접 나섰다.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42개 시민사회단체는 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전담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아동보호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아동보호기관들이 아동학대 근절 ‘컨트롤타워’의 구축을 요청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측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학대받는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심리치료와 보호소 등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 이런 뜻을 모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측은 다른 아동학대전문보호기관들과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올해 들어서만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8건"이라며 "공적 개입 책임을 지닌 정부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아동 폭력 해결을 위한 권고를 거듭 받으면서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령기 미취학 아동 조사,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미실시 아동 조사, 아동학대전담경찰관 설치 등 최근 발표된 대책들은 대부분 2014년 2월 아동학대 사망사건 이후 발표됐던 종합대책에 포함됐던 것들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최근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이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체계가 제 각각이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닌 고등학생은 학대예방대상에서 누락돼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0대 제안'을 통해 정부에 아동보호체계와 관련한 기획·조정 업무를 맡는 전담 컨트롤타워를 설치할 것, 관련 예산을 증액할 것, 피해아동 쉼터와 치료 지원을 확대할 것, 경미한 아동학대에 대한 초기개입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 구축,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인력 확충, 법 집행자의 인식개선 방안 마련, 체벌과 방임 전면금지, 학대예방 홍보 강화도 이에 포함됐다. 이들 단체는 "이를 통해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고, 각 정당 또한 총선 공약에 아동학대 예방 대책을 포함하고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굿네이버스, 학대받는 아동들의 치료비 모금 ‘캠페인’ 벌여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표적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인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는 서울지방경찰청과 함께 올 2월부터 두 달간 학대 피해아동 지원을 위한 온라인 모금 활동을 실시했다. 그 결과 652명의 네티즌 동참과 호응을 이끌어내 목표금액 400만원의 치료비 항목에 관련된 금액을 달성했다고 24일 밝혔다.

 

굿네이버스는 서울지방경찰청과 함께 연간 1만여 건 이상 발생하는 아동 학대 범죄 근절을 위해 2월부터 '착한신고 112' 캠페인을 진행한 것. 이번 모금은 네이버 온라인 기부포털 '해피빈'의 나눔기부 게시판에 해당 사례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게재해 시민들이 소액기부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했고,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인해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굿네이버스는 경찰에서 수사한 아동학대 사례 중 국민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사례를 발굴해 지속적인 온라인 모금활동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11살 소녀의 작지만 큰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 크나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도 경찰, 학교, 주민센터, 굿네이버스와 같은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은 이유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동들을 찾아내고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 가지 않은 아동들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인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고 부모에 의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아동들이 많다.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등 청소년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면 고통 받고 있는 더 많은 아이들이 발견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학대 아동들에 대한 실태 조사가 끝난 후에는 굿네이버스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요청하는 아동학대 근절 ‘컨트롤타워’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여러 기관에서 나눠서 맡고 있는 일을 ‘컨트롤타워’에서 전반적으로 관리하게 된다면 고통의 수렁에 빠진 아이들을 더 많이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동학대 자체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부, 지자체, 학교, 이웃, 아동보호기관 모두가 나서고, 시민 한명 한명이 감시자가 돼 학대 받는 아동이 없는지 살펴보고,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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