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20대 국회의원 총선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연일 신형 장사정포를 쏴대면서 수틀리면 청와대를 겨냥하여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을 가하며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만 같은 공포분위기 조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핵을 인정받으려는 얄팍한 수작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정은의 오락가락 행보를 보면 참말로 일을 저지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이에 대하여 북한의 몰락과 말살을 가져올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냈다. 6.25민족상잔을 경험한 우리는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민족 공동의 자멸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못내 염려된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 눈앞에 닥친 총선전쟁은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애국심에 불타는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것이 국회의원 총선이다. 그들의 경력을 살피면 대부분 훌륭한 학력과 이력을 자랑한다. 어디다 내놔도 부끄럽지 아니할 인격을 갖추고 학식을 자랑할 만하다. 그것이 비록 허장성세일지언정 겉으로 봐선 옥석(玉石)을 구분하기 힘들다. 이미 비례를 포함하여 지역구 입후보는 모두 끝났다.

 

전국에서 천명을 훨씬 상회하는 후보자들이 국민의 선택을 기다린다. 국회의원 숫자는 300명으로 고정되어 있어 한 표라도 부족하면 낙방거사로 전락한다. 4명 중에 한 명 정도만 당선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원내 교섭단체를 표방하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엄청나게 많은 국민의 세금을 받아 선거를 치른다. 5석에 불과한 정의당과 1석으로 버티는 민주당이 그나마 원내의석을 가진 정당이지만 큰 주목의 대상은 아니다.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각 당에서는 공천을 에워싼 계파갈등이 노골화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생도 지적할 수 있는 추잡한 싸움이 한 달 넘게 계속되었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면서 정작 국민은 안중에 없는 선거다. 매번 선거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어서 국민들도 크게 탓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이번 공천을 둘러싼 계파싸움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리더십의 부재, 험지(險地)가 아닌 낙지(樂地)를 차지하려는 치졸, 내 사람 심기 등등 온갖 추잡함의 극치를 이뤘다. 오죽하면 김무성의 옥새투쟁이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해프닝이 벌어졌을까.

 

일국의 집권당 대표가 도장을 가지고 공천마감 하루를 앞두고 지역구로 내려가는 사태는 결국 소기의 목적을 절반 달성했지만 정치적 후유증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3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자기만이 나라를 살리고 경제를 되살리며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이라고 큰소리치겠지만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선거 때마다 들어왔던 말들이 고장난 유성기판처럼 계속 돌아가는 게 선거공약이다. 공약을 발표한 사람도, 공약을 귀담아 들은 사람도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모두 잊어버리는 게 일상(日常)이 되었다. 따라서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고 책임을 묻는 수도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무심코 넘어간다. 이렇게 선거를 치르다보면 이 나라 선거는 백년이 가도 그 타령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국민 스스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사람의 40%가 전과자라고 하는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정권의 핍박을 받았던 정치범 몇 사람은 이미 신원이 확인되어 있으니 문제가 안 된다.

 

나머지는 억울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일시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싸잡아 내침을 당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과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후과(後過)다. 전과도 없던 사람이 선량으로 뽑힌 다음 저지르는 후과는 국민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뇌물로 이권을 챙기는 등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행위가 후과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관련부처의 이권에 개입하고, 자식과 친인척들의 자리를 탐내며, 보좌관들의 월급을 착취하고, 개회 중에 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등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해왔던 사람들이 19대 국회의원 중에는 유독 많았다.

 

국회의원 후보자를 겉으로만 판단하면 모두 인격자고, 모두 애국자들이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추악한 면은 겉포장에 가려 쉽게 찾아낼 수 없다. 게다가 지금 선거법은 후보자의 입은 풀고 돈은 묶었다고 하면서 후보자의 식견과 인격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길이 근본적으로 막혀있다.

 

후보자가 길거리 유세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시장을 찾아다니며 악수공세를 펴지만 국민은 시큰둥하다. 후보자들끼리 비교할 기회를 박탈한 것이 현행 선거법이다. 그것은 합동연설회를 없앤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다른 나라에 없는 합동유세는 국회의원 선거의 꽃이었다.

 

후보자마다 자신의 지지자를 유세장에 몰고 온다. 지지자도 반대자도 모두 상대후보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무대매너부터 연설솜씨, 생김새까지 유권자들은 한 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평가한다. 엉터리 공약에도 박수를 보내지만 속으로는 가위표를 친다.

 

합동유세장은 브라질의 삼바축제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동원되는 즐거움을 준다. 큰 정당에서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자기 후보자가 끝나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은 선거축제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 이번 선거는 현행선거법으로 시행되겠지만 차기 선거에서는 반드시 합동유세가 부활되어 국민의 선거참여를 증진했으면 좋겠다.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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