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수백 개의 도시가 존재한다. 모두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는 동양에서는 중국의 북경이고 서양에서는 이탈리아의 로마라고 하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듯싶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도시들이 즐비하지만 오랜 세월 동양과 서양을 주름잡으며 중심역할을 해왔기에 거론했을 뿐이다. 지나치게 중화를 중시하며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면서 폐쇄적이었던 중국에 비해서 로마제국은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면서 세계로 진출했다.

 

북경과 로마에는 그 명성에 걸맞은 문화유산이 쌓이고 쌓였다. 모든 관광객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곳이 북경과 로마다. 세계는 넓고 크다. 이 도시 말고도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전통이 아로새겨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시들이 자태를 뽐낸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각 도시들은 정치의 중심지, 경제의 중심지, 문화의 중심지 등으로 특색 있는 발전을 자랑한다.

 

미국의 워싱턴은 세계 정치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뉴욕은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서 요지부동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프랑스의 파리는 문화 중심지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영국의 런던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명성을 떨쳤지만 이제는 한 물간 처지로 전락했으며 러시아의 모스코바 역시 동서냉전이 끝나면서 과거의 명성은 시들해졌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공장 밀집지역이 한참 물오를 때가 있긴 있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생산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가졌으나 지금은 아니다. 산업의 발달은 고용증원과 소득증대라는 부수적 효과로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 마법인줄 알았으나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국민의 안중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산업혁명의 모국이었던 영국은 런던을 가로지르는 탬즈강이 공장폐수로 오염되어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강이었으나 수십 년의 정화기간을 거쳐 이제는 살만한 강이 되었다. 파리의 세느강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끼고 흐르는 대부분의 강들은 그 도시의 생명수임에도 불구하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폐수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의 한강, 울산의 태화강, 포항의 형산강, 나주의 영산강, 구미의 낙동강 등등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를 살려내기 위해서 법과 제도를 고치고 다듬어 노력한 끝에 근래에 와서야 겨우 물고기들이 활기차게 헤엄칠 수 있는 강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도시들이 환경과 관련하여 죽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했다. 과거 런던의 스모그는 오명의 대명사였으나 이제는 그 불명예를 북경에 넘겨줬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내몽고의 사막에서 발원한 황사먼지는 1년 내내 북경의 하늘을 뒤덮고 있으며 그것이 그대로 한반도에 유입되어 일기예보를 하는 기상캐스터들이 비나 눈이 오는 것보다 미세먼지가 나쁜 상태냐 아니면 약간 나쁜 상태냐를 꼼꼼하게 보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과거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북경주재 근무자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고 행여 북경근무로 발령될까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되었겠는가.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들도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특성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음식의 도시로 알려진 전주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연계한 역사문화벨트 조성을 본격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혁명이었던 동학혁명은 전봉준 장군이 앞장서 전라감영 전주성을 함락함으로서 그 찬란한 깃발을 올린다. 막강한 무장을 갖추고 견고한 성에 의지하여 대항했던 관군에 비하여 농민군의 무장은 죽창과 쇠스랑, 괭이와 삽과 같은 농기구를 든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나 개벽세상을 만든다는 그들의 정신력은 하늘을 찔렀다. 반면 힘없는 백성의 가렴주구에만 눈이 벌갰던 관군은 지원군까지 동원되었으나 전주성을 빼앗기고 전주화약(全州和約)을 통하여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하고 사실상 지방정권을 인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격전지를 복원시키고 새로운 공원을 조성하여 전주한옥마을, 소리의 고장 국악, 서예비엔날레와 그림 등 문화 사업에 연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곁들여 4.19혁명대학생시위의 효시였던 전북대 4.4시위를 재조명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구에서는 2.28고등학생시위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탑과 역사관을 건설했다. 마산에서도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정하며 3.15국립묘지를 조성하고 기념관을 지었다. 전북대 4.4시위는 고대 4.18보다 14일이나 빠르다. 이에 대해서 전북대 장명수 전 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하여 재조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도하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나 일과성으로 그친 것은 참으로 아쉽다.

 

대구 마산을 찾는 이들이 전주에서도 4.19혁명의 위대성을 파악하는 역사의 재조명은 뭣보다 필요하다. 역사의 기록은 생존인물이 있을 때 가장 정확성을 가진다. 후일 기록의 산일(散逸)과 멸실 그리고 생존자의 육성증언이 없게 되면 찾고 싶어도 찾을 길이 없는 딱한 처지가 된다.

 

현재 전북대 구 정문 앞에 4.4시위의 표지석이 4.19혁명공로자회에서 세운 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전북대 내에 독재와 부정선거에 저항했던 4.19혁명의 기념탑을 조성하여 동학혁명과 쌍벽을 이루는 문화벨트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으면 어떨까.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