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권세가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자리는 대략 선출직과 임명직으로 나눠진다. 선출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조직력과 많은 자금력을 가져야 한다. 조직력은 주요정당의 공천을 받았을 때 극대화될 수 있다. 천하 공당의 조직은 개인의 조직보다 월등하게 앞서있고 광범위하다. 일단 이 관문을 통과하면 지지자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주위에 모여들고 공신력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유리한 입장이 된다.

공당의 조직력에 개인의 조직을 플러스하면 탄탄대로가 될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반면에 개인적으로 우수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주요정당의 공천에서 탈락하여 군소정당의 후보가 되었을 때는 우수한 능력조차 군소정당처럼 오그라든다. 지지자들도 자체 균열을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는 약세로 추락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여당이나 제일야당의 공천에 목을 맨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지만 특히 한국은 지역주의가 팽배하여 똑똑한 사람도 병들기 일쑤다.

지역세가 강하다보니 “걸레나 막대기를 공천해도 당선한다.”는 막말도 나온다. 이 틈새를 노리고 공천헌금으로 엉뚱한 사람이 자리를 꿰찬다. 부도덕한 정치 지도자의 부패다. 깜도 안 되는 인물이 공천을 받는 것은 순전히 돈 노름이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여 국민의 빈축을 샀지만 그들이 지역을 바탕으로 어느덧 3선, 4선을 기록하여 마치 지도급 인사인양 떵떵거린다.

속살이 쓰린 건 국민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지역주의는 안 된다고 큰 소리 치면서도 막상 투표소에 가서는 자기도 모르게 지역정당의 선호도에 비우를 맞췄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치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부패현상을 노정한다. 부패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일이어서 피해자는 국민이다. 스스로 자신의 피해를 부른 셈이다. 캠페인을 벌여 광정해야할 일이지만 언론의 일시적인 규탄이나 일부 시민단체의 여론조성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임명직으로 관계에 진출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국회의 호된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총리나 장관,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총장, 국세청장의 경우다. 총리를 제외하고는 국회의 청문회 보고서에 관계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는 있지만 여론을 무시한 정치를 하기는 어렵다. 이번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청문회 방법을 개선해야 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아직은 일단 문제를 제기하고 보는 형국이 계속된다.

총리나 장관은 국정의 주요 지휘자다. 그들의 능력과 도덕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여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인물로 전락하거나 아예 임명을 고사하여 구설을 피하기도 한다. 국민의 여론은 대개 신문과 방송보도에 의존하는 수가 많아 불합리한 경우도 흔하다. 센세이션을 생명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통속성은 우선 파헤치고 폭로하고 본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후보자는 여론의 십자포화에 휩싸이며 걷잡을 수 없는 나락을 향하여 곤두박질하는 것이다. 총리는 반드시 ‘인준’을 받아야 한다. 인준을 거절당한 총리후보는 김대중시절의 장상과 장대환이다.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가 될 뻔했던 장상은 화려한 이화여대총장을 사퇴하고 총리인준도 받지 못하여 불우한 정치활동을 계속하더니 지난 보선에서 이재오에게 패하여 재기할 동력에 힘이 빠졌다. 그나마 장대환은 정치와 담을 쌓고 언론계의 한 귀를 차지하고 있다.

이승만 정권 때에도 이윤영이 국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였으나 법에도 없는 ‘총리서리’라는 이름으로 총리 직을 수행한 일이 있다. 그러한 이승만의 오만이 결국 4.19혁명을 촉발하는 원인(遠因)으로 작용했을 런지도 모른다. 총리후보 김태호, 장관후보 신재민, 이재훈이 사퇴했다. 청와대가 회심의 카드로 던진 카드가 전면적인 수렁에 빠졌다. 김태호는 40대로 각광받았으나 큰 잘못도 없이 치도곤을 맞았다. 경남도지사인 그가 부산 경남지역 실업가인 박연차와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언제부터 알았느냐”는 질문에 2007년도라고 대답한 것이 꼬투리가 잡혔다. 2006년도에 골프를 친 사실이 밝혀졌고 뒤이어 공식석상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다. 한번 했던 말이 거짓말처럼 되었고 사진은 기름불에 부채질을 한다.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도지사는 지역행사에서 사진 찍는 일이 일종의 선거운동이다. 누구하고 사진을 찍었는지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김태호 역시 기억력 얘기를 했지만 여론은 이미 도를 넘었다. 억울하겠지만 어쩌랴. 지리산의 정기를 받은 소장수 아들답게 대지 위에 굳건히 일어서서 그동안의 고뇌를 훌훌 털고 씩씩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날이 오느냐  안 오느냐 하는 것은 그가 하기에 매였다. 건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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