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중앙뉴스=신주영기자]한진중공업의 선제적인 구조조정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조선업 전반에 극심한 불황과 감원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으나 한진중공업은 이미 몸집을 줄여 생존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은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회사는 2000년 초반부터 금융위기 직전까지 영도조선소를 중심으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영도조선소의 독이 비좁을 정도로 일감이 넘쳤다. 이런 한진중공업이 2010년 12월 영도조선소 생산직 400명에 대한 희망퇴직 계획서를 노조에 갑자기 통보했다. '금융위기 사태 이후 일감이 줄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정리해고 명분은 '선제적인 경쟁력 확보'였다.

 

영도조선소 경쟁력이 버틸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것이 당시 사측의 주장이었다.

노조는 경영손실 전망을 과장하고 노동자에 희생을 강요한다며 즉각적인 파업으로 맞섰다.

노사 갈등은 급기야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시위, 4차례에 걸친 희망버스 운행 등으로 이어졌다. 재야노동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개입했다.

 

무려 11개월이나 끌던 정리해고 사태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해고자 일부 재고용과 생활자금 지원 등 정치권 중재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겨우 일단락됐다.

 

선제적인 구조조정 단행에도 한진중공업은 4년 만인 지난 1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채권단은 이번에도 한진중공업에 어려운 숙제를 던졌다. 그것은 노사 모두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인적 구조조정'이었다.

 

노조는 당연히 반발했고 사측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사측은 생존을 위해 채권단 요구를 이행해야 했다. 결국 지난달 중순 또 한 번의 희망퇴직 시행에 나섰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이달 중순 목표했던 50명을 훌쩍 넘은 6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이다.

 

다소의 잡음이 있었지만 희망퇴직을 둘러싼 노사 갈등도 미미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해양조선 등 빅3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사가 노조 반발에 부딪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갈등도 있었지만 우리는 선제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이는 이번에 채권단 요구를 큰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진중공업은 2011년 대규모 희망퇴직 시행 이후 생산 현장직을 더 줄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한때 4천명이 넘었던 한진중공업 근로자는 현재 7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희망퇴직은 사무직과 지원부서 행정직원, 그 중에도 조선 부문의 고연봉 고참 직원 위주로 진행됐다. 생산직 위주인 노조의 반발이 크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영자금 부족에도 희망퇴직 신청자 전원에게 월 평균임금의 15개월치를 위로금으로 지급하고, 차상위 직급으로의 명예 승격과 함께 자녀 학자금 조기 지급, 재취업 지원 등 희망퇴직 신청자를 최대한 배려했다.

 

한진중공업 경영 정상화 방안 시행은 다음 달 초 9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전체 채권단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한진중공업은 자율협약 신청 이후 인천 송도부지 등 1조5천억원대에 달하는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인력 구조조정도 큰 마찰 없이 완료함으로써 경영 정상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지역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천명을 줄여야 하는 대형조선소와 한진중공업의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한진중공업은 회생에 가장 큰 걸림돌일 수도 있었던 인적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만큼 위기 극복에 자신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노조에 발목이 잡힌 대형 조선소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임은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이제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시작이고 채권단 협의도 남아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며 "다만 온갖 어려움 속에도 몇 년에 걸쳐 시도한 몸집 줄이기가 결과적으로 지금 시점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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